[엄상익 칼럼]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과 광우병 반대 시위
미국산 소고기만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선동이 있었다. 시청앞 광장에 10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흥분해서 몰려들었다. 한 청년이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미국 소고기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지 않아요.”
군중들은 그를 비웃고 침을 뱉었다. 그들을 선동한 주체 중의 한 사람이 일기에서 ‘이명박에 대한 증오가 하늘에 사무쳐’라고 쓴 게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는 시위대 물결이 광장을 휩쓸었다. 별별 소문이 다 돌았다. 한 방송에서 김동길 교수가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서 굿을 하면 못쓴다고 꾸짖었다.
여성 대통령이 방을 아방궁같이 화려하게 차려놓고 남자를 끌어들인다는 괴소문도 돌았다. 흥분한 군중들이 청와대로 몰려갔다. 지도자는 변명 한마디 못한 채 진흙탕 속에 내 던져져 만신창이가 됐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의 변호사로 기록을 보다가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오래된 대통령 방의 나무문짝이 뒤틀어져 문을 여닫을 때마다 끼익하는 마찰음이 났다. 대통령은 그 정도로 문짝을 바꾸라고 지시하는 게 미안했다. 양초를 문짝에 비벼 부드럽게 해서 소리가 나지 않게 했다. 가난했던 우리 세대가 쓰던 방법이었다. 그런 대통령의 방을 아방궁이라고 하면서 욕했다. 먼지를 날리고 진흙을 일으키는 선동에 쥐떼같이 몰려다니는 일부 국민들이 있다. 사실이건 아니건 그 쥐떼에 걸리면 뼈도 추리지 못하는 것 같다.
구순의 한 노인이 그런 천박한 국민을 질타하는 글을 썼다. 그는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강자나 부자에게 가지는 무조건의 증오와 시기심을 지적했다. 증오와 시기로 뭉쳐진 다중의 마음은 한 사람의 속보다도 더 좁다고 했다. 그는 우리 국민의식은 명품백 수준이라고 했다. 고급인 것 같지만 허세라는 것이다. 고학력으로 고고한 줄 알았던 국민의식이 사실은 허깨비라는 것이다.
10대강국이라면 그 국격에 맞는 긍지 있는 국민이어야 하고 자존심있는 국민이라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는 국민의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 낮은 눈높이에 정치가 따라가는 것을 천민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는 국민은 버릇이 없기 쉽다고 했다. 그저 애지중지하며 아무도 매를 들지 않는 아이처럼 국민들이 그렇게 방자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민족정신의 성장을 말하고 있었다. 구순의 그 노인은 <한국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김성우 선생이다.
100년 전 <동아일보>의 이광수 편집국장도 ‘민족개조론’이라는 글을 써 비난의 표적이 됐었다. 신문과 잡지마다 그를 비난하는 글이 실리고 그를 매장시켜 버리자는 연설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금도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그의 민족개조론에 대해 ‘민족해방운동이나 독립운동의 무용함을 강조함으로써 해방투쟁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정말 그가 그런 취지로 민족개조론을 주장했던 것일까. 나는 김동인의 자료를 보고 그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무렵 평양의 음식점 장춘관에서 소설가 김동인과 저녁을 함께 할 때였다.
“쓰신 민족 개조론의 핵심 취지가 뭡니까?” 김동인이 이광수에게 물었다.
“조선 오백년 그 이전까지 포함해서 우리 민족의 내부에는 열등의식과 패배 의식이 병균같이 잠재해 있었습니다. 그걸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조선민족의 병을 치유하고 민족의 정신을 성장시켜서 미국이나 일본 같은 근대사회로 가자는 겁니다.”
“민족개조론 때문에 혼이 많이 나셨죠?”
“투쟁론을 주장하는 해외 망명객 분들은 모독을 받은 것으로 여기시는 것 같아요. 하루는 청년 대여섯명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자정 넘어서 우리 집으로 왔습디다. 내가 대문을 열어주니까 들어와서 이광수를 찾아요. 나라고 했더니 믿지 않더라구요. 여론이 들끓고 내 신변이 위험하니까 내가 피신한 것으로 알고 있더라구. 그들에게 내 입장을 솔직히 얘기해 줬지요. 그랬더니 내 말을 믿었는지 냉수 한 그릇 청해 먹고 나갑디다. 내가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간 것은 사상가가 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논문을 써서 당당하게 동포를 깨우치자는 것이었죠.”
나는 어느 시대나 어른들의 바른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믿는다. 한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성숙한 세상이라고 믿는다. 천박한 국민을 꾸짖는 김성우 선생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