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비누의 미끌거림도, 과일의 새콤함도 신기하고 감사하고…
시편 136편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
세상에서 가장 답하기 곤란한 질문 중의 하나는 어린 아이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는 당연한 것을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번만 물어보지 않습니다. 물어보고 또 물어봅니다.
어른에게는 익숙해서 당연한지 모르겠지만 온 세상이 처음인 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구름 한 조각도, 거울에 비치는 자기 얼굴도 당연하지 않고, 비누의 미끌거림도, 과일의 새콤함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당연함과 멀어진다는 것 아닐까요? 당연함과 멀어지는 길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당연함과의 거리감만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16)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광야로 인도했다고 얼마나 불평했는지 모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매일같이 내리는 일이 당연했습니다. 은혜가 당연해지자 이집트의 음식이 먹고싶다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과 불만으로 점철되었던 광야의 시간을 시인은 감사의 눈으로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말씀합니다. 범사에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 우리의 범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사의 모든 것을 비용으로 환원하며 감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만 원을 냈으니까 밥 한 끼 먹는 것이 당연하고, 요금을 냈으니까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고, 삼천 원을 냈으니까 주문 다음 날 택배가 집 문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연함은 저체온증입니다. 많은 이들이 저체온증에 걸린 것처럼 냉랭하게 살아갑니다. 때로는 싸늘하기까지 합니다. 감사는 사람이 느끼는 가장 따스한 온기가 아닐까요? 시편 136편은 그 온기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3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