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개미와 베짱이…빈궁이 강도 같이, 곤핍이 군사 같이
잠언 6장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잠 6:9)
게으른 사람은 의외로 부지런합니다. 이유와 핑계를 찾는데 얼마나 부지런한지 모릅니다. 그의 삶에는 언제나 핑계가 넘쳐납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핑계들을 찾겠습니까?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핑계를 생각해내는 것을 보면 머리도 비상한게 분명합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잠 26:16)
게으른 사람은 늘 최선을 다합니다. 최선을 다해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오만가지 질타와 질책을 극복하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합니다.
또한 게으른 사람은 긍정적이고 계획적입니다. 늘 계획이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확실합니다.
독일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일주일에 일곱 번의 오늘이 있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일곱 번의 내일이 있다.“ 게으른 자에게는 언제나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니 게으른 사람이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여기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희망 부자, 계획 부자, 이유 부자이기에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게으름을 죄악과 동일하게 취급하십니다 .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주인의 의중은 안중에도 없는 자기밖에 모르는 종에 대한 질타입니다.
악해서 게으르고 게을러서 악합니다. 게으름은 자기 밖에 모르는 태도, 모든 상황을 자기 중심적으로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버릇이기에 악합니다.
‘게으름을 극복하는 5가지 팁’, ‘게으름 극복 명언 30선’ 이런 것을 읽어본다고 게으름이 고쳐질까요? 그걸 읽어보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게으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자아로 똘똘 뭉친 자기가 깨어지고 부서질 때에만 고쳐지는 병입니다. 교만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게으름으로 가득 찬 자아가 어떻게 부서질 수 있겠습니까?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9-11)
망해야 치료가 가능한 것이 게으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빈궁이라는 도둑과 곤핍이라는 군사는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게으름 전문 의료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