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나는 세상과 타인, 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기준으로 저울질하고 있나?
잠언 11장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
자는 자로 재서 만들지 않습니다. 자를 자로 재서 만든다면, 기준으로 삼은 자의 정확도는 어떤 자로 보증할 것인가? 하는 순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길이를 측정할 때 자의 눈금을 활용하지만, 그 자의 눈금이 정확한 지를 알기 위해서는 자가 아닌 다른 기준이 필요합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1m의 정의는 빛이 진공상태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직진한 거리입니다.
마찬가지로 시계의 정확한 시간 측정을 위해서는 또 다른 시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정한 1초의 정의는 세슘-133 원자가 9,192,631,770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1초나 1m는 흔히 말하는 디폴트값들인데, 이 디폴트값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디폴트값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리적 도량형에만 국한되는 이야기일까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도덕, 윤리, 사상, 상식, 사회적 잣대 등에도 근간이 되는 기본값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기본값을 지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저울을 하나씩 든 유스티티아(Justitia)가 되어버렸습니다. 자기 저울로 저울질 해봤을 때 맞지 않으면 틀린 것이라고 우기는 세상이 된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속이는 저울’ 아닐까요? 영점을 제멋대로 셋팅한 저울, 또는 고장난지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저울입니다. 이 저울은 남을 속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 대립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겠습니까?
신앙은 내 저울의 상태를 하나님 앞에서 매일 점검하는 일입니다. 혹시 내 저울이 고장난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신중함이고, 내 이기심의 무게로 인해 저울이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입니다.
나는 세상과 타인, 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기준으로 저울질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혹시 저울이 여러개는 아닌가요?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