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기적과 표적
민수기 23장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임하사 그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민 23:16)
발람의 이야기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무당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알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다는 성경의 기록은 읽기가 상당히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발람은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 주술사였지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만 할 것이 아니라 자기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노라며 구원의 대열에 끼워 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발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본인이 경험한 신비한 현상을 그가 그동안 겪어 왔던 여러 초자연적 현상 중 독특한 케이스의 하나라고 치부해 버렸습니다. ‘무당 인생에 별일이 다 있네, 하나님 신도 받아보고’ 정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민수기 31장 16절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민 31:16)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숭배의 음란한 의식에 참여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이스라엘이 성적인 타락에 빠지도록 함정을 판 장본인이 발람이었습니다. 함정을 설계한 시기가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예언을 했던 직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발람 이야기를 통해서 기적을 보거나 초자연적 현상을 몸소 경험한다고 믿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파라오는 10가지 재앙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끝까지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기적을 본다고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표적이 필요합니다. 기적에는 방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뚜렷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게 만드는 것이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신 후에 사람들에게 침묵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이 기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이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고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라는 분명한 표적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표적으로부터 파생된 기적에 더이상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