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민수기 11장
출애굽 2년 2월 20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을 불며 광야 행진을 힘차게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을 민수기 11장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민 11:4-6)
옛날 남자 어른들 이야기입니다만 2-3년 군대만 다녀와도 그쪽으로는 볼일도 안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430년 노예살이하며 지긋지긋하게 먹었던 이집트의 음식을 이토록 그리워하며 만나를 거부하다니 기가 찰 노릇 아닌가요? 몇몇 사람들이 품었던 탐욕이 삽시간에 전염병처럼 번져서 온 이스라엘을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그들이 하늘의 양식 먹기를 거부하니까 탐욕이 그들을 먹어버렸습니다.
그 정도로 광야가 힘들긴 힘든가 봅니다. 시내산 아래서 1년을 나름대로 열심히 배웠는데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무너집니다. 이집트 노예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느낄 정도면 광야가 진짜 힘들었던 것입니다.
광야란 그런 곳 아닐까요? 세상도 그런 곳 아닐까요? 홍해의 기적과 출애굽의 환희조차 기억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혹독한 곳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악하다고 손가락질 하기가 참 민망한 것은 내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내 앞서 가는 것을 봤는데도, 아침에 내린 만나로 배를 채웠는데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회의적이 되는 곳이 광야입니다.
어쩌면 광야는 그래야 하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에 은혜의 촉촉함이 다 날라가고 추함과 초라함의 결정체만이 남게 되는 일이 당연하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입니다. 광야는 ‘훈련 받으면 좀 나아지겠지’하는 일말의 기대감마저도 한 순간에 증발시켜 버립니다. 하나님께 실망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실망해서 나의 존재가치가 이집트 노예보다 하등한 것으로 짓이겨집니다.
그리고 나면 한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이런 나를 왜 사랑하실까, 왜 구원하셨을까, 왜 나 같은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하셨을까? 그 질문에 직면시키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불러내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