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인격적 관계’이기에 할 수 있는 것들
민수기 32장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민 32:5)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은 요단강 서편에 있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 동편의 모압 평지에 잠시 주둔하며 가나안 땅 입성을 준비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40년 만에 다시 주어진 기회입니다. 과거 가데스 바네아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또 다시 반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 정복에 온 백성이 힘과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므낫세 지파의 일부가 모세에게 말도 안되는 요청을 합니다. 자신들은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강 동편에 정착하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40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습니다(8절).
모세가 화를 내며 펄쩍 뛰자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합니다. 자신들이 요단강 서편의 전쟁에 전적으로 참전해서 형제들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도운 것에 대한 지분을 조금도 챙기지 않고 전쟁이 승리로 끝나자마자 빈손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합니다.
간혹 우리는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막고, 내가 원하지 않는 길만 제시하는 분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가스라이팅하는 분이 아닙니다. 가스라이팅은 인격적이지 않습니다.
인격적 관계란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서로에게 요구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인격적 관계에서는 대화와 조율이 가능합니다. 종종 뜻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상대에게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갈등을 풀고 화해하면서 더 이해하게 됩니다. 그렇게 서로가 가까워질수록 더 솔직해지고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들이 대뜸 요단강 동편 땅을 요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40년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만큼 형성되었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오히려 그들은 본인들이 정착할 땅도 아닌 땅을 정복하기 위해 싸우겠다는 성숙함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지파들로서는 고마운 일입니다. 자기네 땅이 되지도 않을 땅을 정복하기 위해 같이 싸워주겠다고 하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