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신명기 3장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신 3:26)
꿈에도 그리는 그 땅 한번 밟아보고 죽게 해달라는 것이 대단한 욕심은 아닙니다. 모세 정도면 하나님이 허락해 주실만한 일 아닐까요? 그동안 모세의 헌신을 생각해서라도 그 정도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 하나님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 땅에서 천년만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땅 한번 밟아보게 한 후에 데려가셔도 될 텐데 하나님은 일말의 여지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모세가 므리바에서 했던 실수는 간단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과 같은 범죄였습니다. 모세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한 일, 그리고 절대 앉아서는 안되는 하나님의 자리에 단 한 번 앉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결격사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자리를 넘본 것만으로도 이스라엘 지휘관 250명이 한순간에 죽었습니다. 레위인들이 제사장 자리를 탐낸 것만으로도 지진이 나서 땅이 갈라지고 염병이 돌아 14,7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리는 어떻겠습니까?
사실 모세는 처음부터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남자 아이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죽었어야 했고, 나일 강에 던져졌을 때 그의 인생은 이미 끝났습니다. 모세는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물에서 건져 올리신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습니다. 벌써 끝장난 인생에 하나님은 다음 장을 여시고 일을 맡기셨습니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물에서 건짐을 받았다‘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은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평생을 모세로, ‘구원 받은 자’로 살았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만하면 족한 줄 아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해도 족한 줄 아는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이만하면 족한 줄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만큼 강력한 구원의 확신이 있을까요?
모세가 헌신한 것만 따진다면 가나안 입국 금지가 부당한 처사일 수 있겠지만, 모세를 건져 올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린다면 굳이 가나안 땅이 아니어도 그만하면 족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인생에 가나안 땅이 문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