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영원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영과 진리’를
신명기 12장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신 12:13-14)
광야에서는 이동하는 모든 곳이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들고 다니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배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예배란 지정된 장소가 아닌 모든 곳에서 드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신 것일까요? 하도 돌아다녔더니 지치신 것일까요? 지정된 곳 이외의 장소에서 예배를 금지했던 이유는 가나안 땅 곳곳의 산당 때문이었습니다. 산당은 가나안 주민이 바알과 아세라, 몰렉과 같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산당이라는 공간이 예배의 장소로 부적합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드릴만한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따로 있다는 것일까요? 집에서 드리는 것은 예배가 아니고 교회에 가야만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의미일까요?
산당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당은 일종의 플랫폼입니다. 컨텐츠는 플랫폼에 맞게 변형되기 마련입니다. 우상숭배의 플랫폼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한들 그 예배는 플랫폼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듯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같은 급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단일 중앙 성소라는 전혀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산당의 신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성전을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인간입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지 천 년 정도가 흐르자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신만의 전유물로 착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성전 안에 갇혀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또 한 번의 플랫폼 공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이 선언과 더불어 플랫폼 공사가 착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을 찢어 놓으심으로 준공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영과 진리라는 차원이 다른 플랫폼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전 중심의 종교들이 믿는 신들과 하나님이 어떻게 다른지를 경험할 수 있는 영원히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영과 진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