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분노에도, 일과 쉼에도 선이 있습니다”
민수기 34장
“그 경계가 또 요단으로 내려가서 염해에 이르나니 너희 땅의 사방 경계가 이러하니라”(민 34:12)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위치와 면적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제는 위치만 알려주셨지 면적을 알려주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차지할 가나안 땅의 면적은 광야 40년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민수기 34장에서 하나님은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긴장되고 기대되는 순간 아니었을까요? ‘몇 평이나 주시려나?’ 굉장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민수기 34장에는 가나안 땅 남쪽으로부터 시작해서 서쪽, 북쪽, 동쪽 각각의 경계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기왕에 정하시는 거 좀 더 넓은 평수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여기까지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경계는 정복전쟁을 하다가 여력이 있더라도 더 이상 넘어가서는 안될 경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무한한 확장을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드신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선악과는 경계선입니다. 한계선입니다.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에덴의 중앙에 그어두신 것입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선을 지킬 때 아름다울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어놓으신 선은 내가 지켜야 할 선이기도 하지만 나를 지켜주는 선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에 선을 그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욕심에 선을 그으신 것입니다. 선이 없으면 자기를 무한히 확장하다가 자멸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 어떤 경계선을 그어 놓으셨을까요?
분노에도 선이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 4:26)
일과 쉼에도 선이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도피성 제도는 복수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전도서는 기쁨과 슬픔, 미움에도 선이 있다고 기록합니다.
어쩌면 생명이라는 것 자체가 죽음이라는 경계선 안에 있을 때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 아닐까요?
‘욕심도 여기까지’
‘분노도 여기까지’
‘슬픔도 여기까지’
‘일도 여기까지’
‘쉼도 여기까지’
‘즐겁지만 여기까지’라고 할 줄 아는 것이 우리 인간이 창조된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