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자리
창세기 40장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니면 잘 잊어버리곤 합니다. 심지어 그 일이 누군가의 생존 문제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지구 곳곳에서 학살, 기아, 전쟁, 질병, 기후변화 등의 이슈들이 발생하지만, 우리는 자기 일에 몰두하다 보면 금세 잊어버립니다. 죽고 사는 문제 앞에 놓인 그곳의 한 사람보다, 이곳에서 먹고 사는 일이 당장 내게는 더 위급하고 중요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상에 집중하다가도 TV에 스쳐 지나간 짧은 장면이 뇌리 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미 자기에게 중요한 일이 된 것입니다. 계속 생각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억은 사건의 지평선처럼, 내 세상이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는 경계입니다. 동일한 공간에 있어도 그 공간 너머의 세상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 공간이 자기 세상의 전부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천 년의 역사 위에 서 있는가 하면, 과거도 미래도 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 후에 다른 세상을 살았습니다. 감옥과 궁전은 달라도 너무 다른 세상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만큼만 생각하고 기억하며 사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니면 복직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곳을 자기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을까요? 어쨌든 그는 수감 시절의 동료를 잊어버립니다. 감옥에서의 기억을 자기 인생에서 지워버립니다.
요셉은 2년 동안 잊혀진 존재로 살았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게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복직 후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출소하자마자 요셉을 잊었습니다. 요셉의 인생에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것입니다. 모든 이의 기억에서 지워진 채, 홀로 덩그러니 감옥에 남아 마주했어야 할 외로움과 불안은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일부러 2년을 더 기다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시간을 지체하며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리기라도 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요셉에게 그 2년은 모든 가능성이 0에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품었던 일말의 기대와 신뢰를 모두 내려놓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그 자리에 하나님은 새로운 싹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