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레위기 마무리하며 ‘복과 벌’을…
레위기 26장
내가 획득하고자 하는 복을 위해 신을 수단으로 삼는 신앙을 기복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복이란 대체로 재물이나 번영과 같은 물질적 복을 가리킵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내가 목표로 하는 복을 가장 빠르고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를 가장 좋은 신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복을 위해 신을 바꾸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다가 일이 잘 안풀리면 절에 나갔다가 그래도 잘 안되면 또 다른 신을 찾곤 합니다. 복을 받을 수 있다면 여러 신을 동시에 섬기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좋다고 하는 신은 다 믿습니다. 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기복주의 신앙이란 복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대부분의 이유가 기복주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행위에 하나님은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26장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마치 기복신앙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레 26:3-4)
‘말 잘 들으면 복 받고, 말 안들으면 벌 받는다’ 이렇게 읽히기도 합니다. 복 받고 싶으면 명령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규례와 계명이 수단이고, 복이 목적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26장을 면밀히 읽다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의 본질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벌이라는 것도 관계 회복을 위한 경고의 차원입니다.
값 비싼 선물을 줘서 좋은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이 줘서 값진 선물이 있습니다. 맛있는 밥을 사줘서 좋은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과 먹어서 맛있는 밥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가도, 옆자리에 싫은 사람이 타면 좋은 차가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습니다.
레위기 마지막 부분의 복과 벌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복이 좋은 이유는 그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고난 중에도 소망할 수 있는 건 그 또한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면 복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도리어 벌의 요인이 됩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고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면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별 차이가 없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