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신병훈련소 보는 것 같은 민수기 1, 2장
민수기 2장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민 2:2)
민수기 1, 2장은 신병훈련소를 보는 것 같습니다. 이집트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오기 바빴던 그들이 오와 열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전투병력 인원파악을 완료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대열을 갖춥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각 방위마다 세 지파씩 자리를 잡았습니다. 자대 배치를 받은 것입니다. 누구는 동쪽, 누구는 서쪽이었습니다. 한번 배치를 받으면 변경이 불가능했습니다. 자리 로테이션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광야 생활이 끝날 때까지 고정위치였는데, 40년 동안 그 자리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게다가 레위인 같은 경우는 보직 변경이 불가능했습니다.
자기 군생활이 제일 힘들었다는 게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늘상 하는 이야기입니다. 남의 떡이 늘 커보이는 법입니다. 북쪽 진영 지파들은 동쪽 진영에도 한번 서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왜 맨날 유다지파만 선두에 서냐?’, ‘우리는 유다지파 꽁무니만 따라다녀야겠냐?’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요?
레위인들 입장에서는 제사장들 심부름하는 일 말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지 않았을까요? 민수기 16장에 가면 그들이 품고 있었던 속마음이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레위인들이 제사장의 자리를 넘봤던 것입니다.
한번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불행합니다. 모든 자리가 똑같지는 않습니다. 똑같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의 이 상황을 나에게 허락하신 의미에 대해 묵상하는 편이 다른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소신과 주관 없이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태도와는 다릅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으로 유명한 라인홀드 니버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