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의 맛집]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올해 어떤 결심을 하셨는가? 나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누구와? 무엇과? ​살과 헤어질 결심을 하면야 좀 좋으련만, 그건 이제 포기했고, 그냥 함께 살기로 했고, 나 자신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럼 죽겠단 말인가? 그렇다, 죽으려고, 그것도 날마다.

그런데 얼마나 안 죽으면 사도 바울조차 날마다 죽는다고 했을까? 또한 죽는 게 오죽 힘들면 ‘자랑’이라고까지 했을까?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

그래도 죽어야 한다, 그것도 날마다! 죽는 것이, 죽을 수 있는 것이 자랑이 되어야 한다. 그게 삶에서 가장 큰 자랑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살아나면 죽이고, 또 살아나면 또 죽이고, 또또 살아나면 또또 죽이고, 또또또 살아나면 또또또 죽이고…날마다 죽으면 대인관계가 아주 쉬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인간관계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가장 쉬운 일이 되어버린다.

내가 해보니 알게 됐다. 죽고 나니 누구를 만나든 아무렇지가 않은 거다. 왜? 나는 죽고 상대만 살아있으니 상대의 입장만 생각하면 되니까. 내가 나를 내세우려고 하니까, 상대와 겨루려고 하니까 대인관계가 어렵지 나를 딱 죽여버리면 세상 쉬운 게 관계맺기였다.

​나를 내세우고, 내 자랑하고, 내 욕심 부리고, 손해 안 보려고 하고, 내 돈 안 쓰려하고, 상대 벗겨먹이려 하고, 체면 안 구기려하고, 잘난 척하고, 교양 있는 척하고, 예쁜 척하고, 비교하고, 자존심 안 상하려 하고,지지 않으려 하고, 절대 잘못 인정 안하고,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우위에 서려고 밀당하고, 묘한 심리전 하고, 힘겨루기 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걱정하고, 염려하고, 조언하고, 충고하려 하고, 지적질하고 등등…, 그렇게 하니 대인관계가 어려워지는 거였다.

나는 자식들을 대할 때 특히 확실히 죽는다. 그랬더니 자식들이 내게 돌아왔다. 15세에 집 나가 심리적 고아로 유리방황하던 두 아들이 20년만에 내 품으로 돌아왔다. 내가 죽은 지 2년 만에. ​살아있을 때는 결코 가까이 오지 않더니, 내가 딱 죽고나니 저절로 찾아왔다. 전 남편을 돌아오게 하려면 이제 또 한번 내가 완전히 죽어야겠지.

​그렇게 내가 죽은 자리에 꽃 한 송이 피어올랐는데 그 꽃의 이름은 ‘사랑’. 꽃말은 아래와 같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장 4~7절)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단, 내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랑이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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