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연의 영혼의 혼밥] “돈 4만원에 ‘하나님’ 소리를 듣다니”
[아시아엔=신아연 작가, <스위스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저자] 필자는 가난한 동네에 산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일상 풍경이고 다리를 잃어서 바닥에 엎드려 구걸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3년 간 이분들을 볼 수 없었다. 왠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계속 마음이 쓰이던 중에 두달 전쯤에 딱 한명 봤다.
?2년 전, 동네 할아버지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이제 이 할아버지와 필자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필자를 만나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최소 그날 한끼는 무엇으로든 때울 수 있다. 우유 사 드시라고 돈을 드리면 그 돈으로 우유와 색깔이 비슷한 막걸리를 사 드셔서 속상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필자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데 명백한 신성모독이다. 그러더니 얼마 전부터는 “부인, 고맙습니다” 이러신다. 제 정신이 돌아오신 거다.
이 말을 하고 나니 세상 좋은 일은 혼자 다 한 것처럼 들리셨을 것 같다. 오늘 필자가 잘난 척을 오지게 해서 ‘하늘 잔고’는 텅 비었을 것 같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셨는데 세상 모든 손이 다 알아버렸으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시 올려 본다. 2020년 8월 27일자, 338회 영혼의 혼밥 ‘할아버지, 이러시면 안돼요!’다.
한달 좀 더 지난 일이다. 장을 보러 가는데 집 앞, 큰 길 가에 왠 노인이 쭈그리고 있었다. 몸피가 작고 움직임이 느려 무심코 지나칠 뻔 하다가 가만히 보니 먹다 버린 음식물 그릇 뚜껑을 이것저것 열어보는 것이 아닌가. 음식 그릇 속에서 건진 플라스틱 숟가락을 바지춤에 닦으며. 멀찍이 서서 좀더 지켜보니 그 숟가락으로 짬뽕 국물을 휘젓기도 하고 이쪽 그릇에 담긴 것을 저쪽 그릇의 내용물과 합치기도 하면서 뒤적뒤적 거린다. 정신이 좀 이상한 노인인가 싶었지만 일단 다가갔다.
“할아버지 여기서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왜 지저분한 음식물 그릇을…”
“하도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을 만한 게 있나 싶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제발 아니기를, 설마 했었건만.
“할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이러시면 안 돼요. 남이 먹던 걸, 더구나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병균이 얼마나 많겠어요. 배탈 나면 큰 일 나요.”
“며칠 아무 것도 못 먹어서… 너무 기운이 없어서…”
“무료 급식소라도 가시면 되잖아요.”
“거기까지 갈 힘도 없고,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고…”
굶주린 노인은 대답조차 하기 힘겨워 보였다.
“할아버지 이 돈으로 밥 사 드세요. 그리고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갖고 있던 돈 전부를 노인의 손에 쥐어 드렸다. 일주일 치 장을 보려던 4만원. 나로서는 큰돈이었지만 노인의 말에 충격을 받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갑을 열었던 것이다.
“하나님!”
“네?”
“하나님, 하나님이라구요!”
노인은 감동과 경이의 표정으로 실로 감격 어려했다. 갑자기 기운이 솟아 목소리마저 우렁찼다. “할아버지,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런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고작 돈 4만원에 ‘하나님’ 소리를 듣다니. 살면서 그렇게 놀란 적도 없었을 것이다. 성경 마태복음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는 했지만.
“나 이제 밥 먹게 됐어요. 살았어요. 이 돈으로 밥 사먹고 병원도 갈 수 있게 됐어요.”
노인은 일순 밝아진 얼굴로 돈을 손에 쥐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네, 그러세요, 할아버지. 어서 사 잡숫고 기운 차리셔서 다음엔 급식소로 가세요.”
나무 등걸처럼 굵고 검고 거친 노인의 손마디를 차마 보기 민망해 눈길을 피하며 노인을 배웅했다. 구부정한 어깨로 힘겹게 발을 떼는 노인의 뒷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슬퍼 그 길로 집에 되돌아왔다. 어차피 시장 볼 돈도 없으니…
갑자기 무기력감이 몰려와 그대로 방에 누워 버렸다. 나야 한 일주일 어떻게 때우면 되지만 저 노인을 어찌하나… 또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어찌 그 한 사람뿐일까.
며칠 마음이 무거웠다. 털어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먹다 버린 음식을 뒤적이던 노인 생각이 났다. 그날 이후 플라스틱 배달 그릇에 담긴 짜장면, 짬뽕 찌꺼기가 예사로 보이질 않고 노인이 또 그러고 있을까 싶어 지레 겁도 났다. 혼자 갖고 있기엔 버거워 한참 지나 지인에게 그 날의 일을 털어놓고서야 좀 가벼워져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 전, 같은 장소에서 노인을 봤다. 가슴이 철렁하려던 순간, 전보다 훨씬 기운을 차린 모습으로 폐지를 줍고 계셨다. 옆에는 여전히 음식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지만 관심 없어 보였다. 이제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글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