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신아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4박5일 동행기

신아연 지은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스위스에서 조력사한 분의 1주기 기일에 맞춰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책과나무)가 출간됐다. 저자 신아연은 2021년 8월 26일 스위스 바젤에 있었다.

신아연은 “그 긴장감, 그 절박함, 그 두려움, 그 안타까움이 다시금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납골당에 유골을 모시듯,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에 망자의 영혼을 안치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고 했다. 저자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삶과 죽음의 여행을 아직은 계속해야 하니까요”라고 했다.

“모든 죽음은 삶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스위스 조력사 동반 여행에서 비롯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기록했다. 스위스 조력자살을 선택한 세번째 한국인과 동행한 저자의 체험 기록이자, 삶과 죽음을 다룬 철학 에세이다. 독자라는 인연으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폐암 말기 환자의 조력사 동반 제안을 받아들인 후, 환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동안 저자 신아연 본인의 감정적 파고와 안타깝고 절박했던 현장의 상황을 써내려갔다.

죽음 배웅을 하고 돌아온 저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과정에서 창조주를 만나고, 극한의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죽음을 택한 그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 이면의 죽음마저도 영생을 향한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안락사나 조력사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때에 2016년, 2018년에 이어 2021년, 한국인으로서는 세 번째로 스위스에서 조력자살을 택한 말기 암 환자와 동행한 후 담담히 써 내려간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책은 관련 법 제정 이전에 삶과 죽음이 일상 대화 속으로 들어오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한 독자로부터 스위스 조력사 동행 제안을 받는다. 본인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해달라는 부탁이다. 책에는 죽음 여행을 떠나기 전 죽음과 삶을 성찰하며 두 사람이 나눈 깊은 인문적 대화와, 실제로 죽어야 하는 사람과 그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이 담겨 있다. 스위스로 떠나기 전, 저자는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보리라 마음을 다잡지만 결국 죽음의 침상에 눕고 마는 그를 보며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든다.

특별한 배웅을 하고 온 저자는 안락사와 조력사 논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위태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조력사 현장을 경험한 후 기독교인이 된 저자는 “스위스에 동행했다고 해서 조력사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며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며 따라서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력사는 또 다른 조력사를 부를 것이라는 현실적 우려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몇 대목을 보자.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지인이 있습니다. 우리 삶은 모두 시한부지만 그분은 그 선이 보다 명확해졌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호주에 살고 있는 암 환자이고 스위스에서 도움을 받아 생을 마칠 계획을 세워두셨지요. 엊그제 갑자기 그분이 제게 스위스로 조력사 여행을 떠날 때 동행해 줄 수 있을지 의사를 물었습니다. 함께 갈 수 있다면 경비는 당연히 본인이 부담하겠다는 말씀과 함께.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저에 대한 그분의 신뢰에 대한 놀라움, 여행의 특성에 대한 놀라움, 제 역할에 대한 놀라움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만약 정말 그분의 죽음 여행(기어이 이 말을 꺼냅니다. 참 많이 망설였습니다.)의 동행자가 된다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배웅하게 된다면 돌아온 이후 제 삶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pp.22~23)

“조력사 단체에서 담당 의사가 찾아왔고, 마지막 면담을 한 후 ‘최종 사인’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두렵지는 않은데 어릴 때 달리기 출발선에 섰을 때처럼, 아니면 대중 앞에서 연설하기 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되네요. 어떤 면에선 설레기도 해요. 내일 아침에 데리러 온다고 했어요.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거지만 엄밀히는 내가 저승사자를 찾아가는 거지’라고 하셔서 우리를 또 한 번 망연한 두려움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p.66)

“이제부터 충분히 시간을 드릴 겁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준비가 되면 저희를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한 후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그분 조카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우리도 따라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수고 많았어요.” 담담한 어투에 따스한 표정,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예행연습’을 했으면 저럴 수 있을까요.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제가 물었습니다. “글쎄요… 어디든 가겠지요.” “좋은 데로 가실 것 같나요?” “있다면 갈 것 같아요.” “지금 누가 가장 보고 싶으신가요?” “어머니요. 부모님이 마중 나와 계시면 좋겠어요.”(pp.96~97)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어진다. ​

Part 1

2021. 7. 25(일)
스위스 안락사 동행 제안을 받았습니다

8. 10(화)
죽음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8. 13(금)
스위스행 항공권을 받다

8. 21(토)
생애 마지막 생일

8. 22(일)
죽으러 가기 위한 코로나 검사

8. 23(월)
죽음의 대기 번호 ‘444’

8. 24 새벽(화)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스위스로

8. 24 오후(화)
드디어 그를 만나다

8. 25(수)
귀천을 하루 앞둔 날

8. 26(목)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다

Part 2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한 5개월

내가 만난 큰 바위 얼굴

무덤들 사이를 거닐며

두 가지 문제

삶과 죽음의 맞선 자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 주는 의미

나 죽고 그대 살아서

죽음을 쓰는 사람

막상 내 죽음이 닥쳐 봐, 그게 되나

영성의 배내옷, 영성의 수의

죽음은 옷 벗기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

나의 영끌리스트

죽음 앞의 소망

사후 세계의 확신

신이 뭐가 아쉬워서

글을 마치며

저자 신아연(Shin, Ayoun 申娥延)은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왔다. 21년 동안 호주에서 살다 2013년, 한국으로 돌아와 자생한방병원에 ‘신아연의 하루보듬 도덕경’을 연재하며 생명과 마음에 관한 소설과 칼럼을 쓰고 있다.

인문단상집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내 안에 개있다>, 생명소설 <강치의 바다>, 치유소설 <사임당의 비밀편지> 등과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등을 썼다. 공저로 <다섯 손가락> <마르지 않는 붓> <자식으로 산다는 것>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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