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타고남’과 ‘거듭남’
요한복음 3장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타고나다’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가진 상태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습니다. 얼굴이나 체질, 성별과 같은 것들도 타고나는 것입니다.
흙수저나 금수저와 같은 말이 생긴 것은 사람들이 부와 가난도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니고데모 당시, 사람들은 신분을 타고 났습니다. 장자로 태어나 가문의 유산을 상속받는 권리도 타고나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의 머릿 속은 자신들이 타고난 선민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세상은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이 타고난 사람들의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시도로 가득한 곳입니다. 근대 이전까지는 신분제도에 대한 투쟁이 그러했고, 요즘은 타고난 자기 외모에 대한 투쟁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래의 형질을 바꿀 수 있는 유전자 변형 기술의 발전도 눈부십니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타고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중심성입니다. 우리는 지독한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이라는 본성을 타고났습니다. 희생하면서도 이기적이고, 사랑을 하면서도 자기 중심적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죄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까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고치고 고쳐도 인간의 본성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딱 하나입니다. 거듭나면 됩니다. 다시 태어나면 됩니다.
구원이란 타고난 죄인을 거듭난 의인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타고난 죄의 본능을 이용해서 비지니스를 하는 것이 종교 시스템라면, 진정한 신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새 인생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번 생은 글렀다며 좌절한 사람에게 찾아가셔서 두 번째 인생, 새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이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