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

“우리 인간은 본다고 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못보는 것입니다. 새만 하더라도 자외선, 적외선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철새들은 지구의 자기장을 눈으로 보며 비행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먼거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사진 김연수 작가>

요한복음 9장

탁구 경기 중에 벤치에 앉아 있던 코치가 경기 흐름을 끊고 타임 아웃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코치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치의 코칭으로 선수는 자신이 뛰고 있는 경기에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야구에서 타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선구안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타격 기술이 있더라도 공을 보는 눈이 없으면 기술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운동경기뿐일까요? 사람을 볼 때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회사가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좋은 눈을 가진 면접관들이 좋은 인재를 발탁합니다. 결혼 상대를 찾을 때도 사람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물건 살 때도 어떤 사람은 가격을 보고 사지만, 어떤 사람은 가치를 보고 삽니다. 다른 눈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기껏해야 가시광선을 보는 게 전부입니다. 가시광선은 빛의 스펙트럼 중에 0.003%도 안되는 영역입니다. 인간의 감각기관 전체가 받아들이는 정보 중 80%가 눈을 통해서 들어온다고 하는데, 그 눈을 통해 파악 가능한 세상이 실제 세상의 1/10,000에도 채 못미친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은 본다고 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못보는 것입니다. 새만 하더라도 자외선, 적외선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철새들은 지구의 자기장을 눈으로 보며 비행을 합니다. 그러니까 그 먼거리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요 9:39)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본다고 하나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극히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세상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살고 있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9장의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은 본인이 못 본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예수님의 도움으로 눈을 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잘 본다고 착각했던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를 눈 앞에 두고도 눈 뜰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살다 보면 눈을 뜨는 시기들이 있습니다. 이성에 눈을 뜨고, 돈에 눈을 뜨고, 세상 물정에 눈을 뜨는 그런 시기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떴던 모든 눈이 감겨지는 순간도 옵니다. 죽음입니다.

세상 만사에 모든 눈을 다 뜨고도 믿음의 눈을 뜨지 못한다면, 그동안 떴던 눈들이 감겨질 때 영혼은 스올의 어둠으로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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