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다른 종류의 죽음, 다른 방향의 생명

“예수님은 다른 종류의 죽음과 다른 방향의 생명을 선물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영생은 매일 죽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매일의 죽음을 통해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너머가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사진은 신도섬 이정표)


요한복음 11장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인간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병에 걸려도 죽고, 병에 걸리지 않아도 죽습니다. 사인死因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인이 없어도 죽는다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죽음에는 때가 있을 뿐이지 원인 같은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인이 있어야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근본적인 사인은 출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간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항상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죽음에 조금 더 가까워졌고, 오늘이 지나면 오늘만큼 죽음에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살아가는 만큼, 그 만큼 죽어갑니다. 말이 좋아 살아가는 것이지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순간에도 우리는 늘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단 한번도 죽음으로부터 멀어져본 적이 없는 것, 그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언제나 죽음을 향해 있습니다. 살면 살수록 죽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런 살아감의 방향이 전환되는 것입니다. 사는 것 같지만 죽어가는 생명이 있습니다. 인생이 죽을 맛입니다. 그러나 죽어가면서도 살아나는 인생이 있습니다.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어도 죽는 게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하곤 합니다. 왜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을까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르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것입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단 한번도 죽음으로부터 멀어져본 적이 없는 인생이, 죽음을 통과한 후, 점점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종류의 죽음과 다른 방향의 생명을 선물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영생은 매일 죽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매일의 죽음을 통해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너머가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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