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배신자나 수제자나

가룟 유다의 입맞춤,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작


누가복음 22장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눅 22:34)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눅 22:48)

베드로는 가룟유다같은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안톤 라인베버 작 ‘베드로의 부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는 말을 할 때까지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다른 제자들은 산 아래에 두고 자신과 야고보와 요한에게만 따라오라고 하셨을 때까지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자신과 야고보와 요한에게만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셨을 때까지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할 때까지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그 순간, 칼을 빼들고 군인들을 가로막을 때까지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베드로는 자신과 유다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 서보니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돈을 받고 스승을 판 가룟유다나, 스승이 보는 눈 앞에서 안면몰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승을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나 똑같은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누가 더 나은 사람인가’ 항상 이 문제로 제자들은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다 똑같았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만 우리는 모두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만 ‘저 인간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난 달라.’ 이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은, 영적인 우월감에 우쭐하거나 반대로 영적인 열등감에 짓눌리는 것은 내가 십자가에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내 시야 밖으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서봐야 압니다. 내가 가장 큰 죄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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