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 박정희·이병철·정주영, 1910~1917년 ‘기적의 탄생’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사진 왼쪽부터)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대한민국의 굴기!

지난 10일 진주시 내동면 능력개발관 대강당에서 열린 ‘K-기업가정신 국제포럼’에는 벽안의 외국인들도 많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스마트폰으로 연신 사진을 찍으며 눈과 귀를 기울였다. 서양 기업가와 K-기업가 정신을 비교한 세션에 특히 주목했다.

ESG를 필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공동체를 우선한 K-기업가 정신에 그 답이 있다는 걸까? 이웃과 공동체, 나라, 사람을 중하게 여긴 K-기업가 정신! K-팝, 드라마에 이어 기업가 정신까지 해외에서 관심이다.

K-기업가 정신 포럼에서 주목받은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은 가히 ‘K-기업가 성지’라는 찬사를 받을만한 곳이다. 한국 산업의 중추를 이룬 삼성·LG·GS·효성의 1세대 기업인들이 태어난 곳은 함안과 의령 등으로 달라도 이곳에서 동시대에 교류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병철·구인회·허만정·조홍제, 지수마을 K-기업가에 외국인들까지 ‘감탄’

행사는 진주시와 세계중소기업협의회(ICSB)가 네개 기업 창업주의 ‘사업보국’ 철학이 진주에서 발원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공동 기획했다. ICSB는 1955년 미국에서 창설, 90개국 5000여 회원을 거느린 비영리단체다. 주로 학자, 기업인들이 모여 구성했다. ‘유엔 세계 중소기업의 날’도 제정했다.

한 참석 교수는 “대기업 네 곳이 어떻게 한 마을에서 시작할 수 있었는지,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했다. 포럼 참가 학자와 기업인들은 입을 모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 커진 지금, 한국의 ‘K-기업가 정신’이 ‘K-팝’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1960년대 가난했던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인정…”(김기찬)

오늘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들 중 단연 압권이다. 1910년과 1917년의 7년 사이, 기적이 일어났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13년 전, 바로 그해 1910년 12월 12일 호암 이병철이 났다. 지수 마을에서 교류한 4대 대기업 창업자 중 최연소였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만들어 사업보국을 실천했다. 국망의 해, 나라를 먹여 살릴 인물이 태어났다니 우리 민족에게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1915년 11월 25일 아산 정주영이 태어난다. 아산은 조선대국에 이어 자동차대국의 꿈을 이뤘다. 영원히 지지 않을 제조업 성공신화의 주인공 중 한명이다.

“호암 이병철과 아산 정주영의 위업은 광개토대왕에 필적한다.”
역사가 기록한 장군들은 거의 외적의 침략을 물리친 사람들이다. 대륙을 공격해 영토를 넓힌 이는 광개토대왕 같은 몇 사람뿐이다. 냉전을 거쳐 자본주의가 대결에서 승리했다. 중국이 발톱을 드러내고 발호하지만, 역부족이다. 지금 세계는 시장을 누가 먹느냐, 각축전을 벌인다.

호암과 아산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 피땀으로 교두보를 확보, 진을 쳐 영토를 확장했다. 5대양과 6대주에 발품 팔아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호암 아산을 이어보려던 김우중은 좌절하고 말았지만…
5년 터울 호암과 아산의 출현만으로도 참으로 기적이다.

아산 정주영 탄생 2년 뒤, 1917년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출현했다. 모진 생명줄을 붙들고 태어난 작고 못생긴 아이가 부국강병의 길로 힘차게 달렸다. 수출주도 및 중화학공업, 외자도입 전략은 좌파학자들의 비아냥을 누르고 성공한다. 유신독재라는 만년의 허물에도 식민지-패배주의에 찌든 역사의 물꼬를 바꿨다. 박정희 없이, 호암 아산이 어찌 굴기할 수 있었겠나? 그 역도 성립한다.

호암 아산의 걸출함은 박정희 위업까지로 연결된다.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영웅들 셋이 7년 사이에 나왔다.

정말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다. “절망적 무에서 찬란한 유(有)를 창조했다. 한반도 천지개벽의 이 순간을 살면서 우리 민족에게 세 사람을 한꺼번에 주신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양상훈) 지금 읽어봐도 12년 전,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은 오지다. 남들이 흘려버린 관점, 즉 인사이트를 담고 있다.

박정희가 일제 관동군 소좌였다고 비난한다.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난질이다. 백선엽이 다부동에서 “나를 쏘라!”며 돌진했다. 그렇게 나라를 지킨 토대에서 박정희가 있었다. 백선엽과 이용문이 걸출한 좌익장교 박정희를 구명했다.

기적과 같이 태어나 간신히 목숨을 구명한 박정희는 산업화 기수로 나라를 반석에 올릴 초석을 쌓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여러 부문에서 일본을 제치고 있다. 한때 친일했는지 모르지만, 궁극에는 진정한 극일을 했다. 일본의 선진문물을 배우고 익혀서 결국 식민 압제를 눌렀다.

일본과 가장 잘 싸운 게 역설적으로 박정희요 이병철, 정주영이란 얘기다. 세 사람이 쌓은 적공에 비하면 허물은 지엽이다. 이들의 공과 과를 굳이 따지자면 ‘공9 과1’이다. 지수에서 교류한 넷, 이병철 구인회 허만정 조홍제.

‘K-기업가 정신’ 신문기사를 보면서 떠오른 단상이다. 이 거목들과 함께 했던 우리의 위대한 역사에 대해 본격적 재평가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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