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 북 김여정의 ‘대한민국’ 발언 다음날 동해에 탄도미사일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 남매


북, 한미일 정상화+힘 앞세운 윤 정부에 ‘감상적 통일전략’ 포기?

북한이 12일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지난달 15일 이후 27일 만이다. 앞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0∼11일 담화를 내고 “미국 공군 전략정찰기가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 상공을 침범했다”며, “이를 반복하면 군사적 대응 행동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백두혈통 김여정은 당시 대남 비난 담화에서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고 칭했다. 노동당 부부장으로 미 공군 대북정찰은 북미간 문제라며 ‘대한민국 군부’는 개입 말라고 했다.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이라고 했다.

종래엔 남조선, 괴뢰라는 표현만 단골로 써왔다. 비난 메시지에 ‘대한민국’을 쓴 건 처음이다. ‘대한민국’에 << >>강조 표시까지 써, 의도적으로 ‘대한민국’을 쓰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여정 멘트는 사실상 수령 김정은의 뜻이다. 북 최고 담화에 ‘대한민국’을 사용한 셈이다.

그동안 특수관계로 간주해 왔던 남북 관계를 일반관계로 대체하려는 뜻일까? 그것도 ‘적대 국가’라는 쪽으로 말이다. 그런데 발표 직후 12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사태의 추이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북한은 지난 1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20주기 금강산 추도식을 뿌리쳤다. 그 때도 조평통이 아니라 외무성을 내세웠다. 이 역시 ‘국가 대 국가’ 스탠스로 보인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의사결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91년 기본합의서는 남북을 국가와 국가가 아닌, 통일 지향의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북한이 이번에 대한민국이라 칭하며 특수관계를 부정한 배경은 짐작이 간다. 분단 상태를 영구화하려는 뜻도 담겨있을까?

통일 논의 거부와 동전의 양면인 세습체제의 영속화를 꾀하려는 속내도 담겨있을 거다. 통일부는 북의 변화에 “예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공식문건에서 볼 수 없던 대한민국 호칭에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북은 2019년 ‘하노이 노딜’ 후, 공세를 강화해왔다. 2020년 6월 “남측과 더 이상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며 개성 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민족’에 기초한 대남노선 수정의 공식화다. 2021년 8차 당대회 후 대남비서 직까지 없앴다. 북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인 작년 8월 “절대 상대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도 놓았다.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며 신경질적으로,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앞으로 ‘한 민족’으로 최소한 배려도 하지 않을 참일까? ‘같은 민족에게 핵까지…’

“근거없이 ‘설마’하는 무망한 기대에 쐐기를 박아버린 것으로 여겨야 할까?” 말이다. 바람이 부는 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언제나 잎새가 흔들리면 알 뿐이다. 대한민국 호칭은 ‘흔들리는 잎새’일까?

그러니 거센 바람이 곧 불어닥칠까? 핵·미사일 문제에서의 불타협 노선 말이다. 그리고 서해북방 도서 등에 대한 도발까지? 천안함 폭침처럼 모르쇠 시치미 뗄 도발이나 대규모 지하핵 실험에 나설 수도 있다. 북의 의도를 단단히 살펴 의연하게 대응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북의 변화로 가장 타격을 입을 쪽은 누군가? 종북 친중 주사파가 아닐까?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 15만명 앞에서 ‘남쪽 대통령’이라고 했다. 남북이 만날 때마다 ‘대한민국’대신 ‘우리나라’로 칭했다. 과거 조총련은 북의 정책변화로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2002년 9월 17일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납치문제를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했다. “반공화국 세력의 모략책동”이라고 선전했던 조총련은 일거에 조직 붕괴에 내몰렸다.

한 대북전문가는 “김정은이 북의 국가목표 우선순위를 ‘핵무력 완성’과 ‘경제건설’로 잡은 걸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마침내 ‘민족’은 가고, ‘국가’가 온 것이다. ‘핵무력’과 ‘경제발전’을 새삼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3대세습 후 ‘정권 안위’가 요동칠 걸 우려한 나머지 이 두가지를 최우선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2021년 8차 당대회 때도 움직임은 포착됐다. 노동당 규약 개정 때 “민족해방민주주의 혁명” 문구를 삭제하고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사회 건설”을 넣었다.

대남업무 담당자들이 ‘노딜’ 후 혁명화 교육을 받거나 아예 사라졌다. 기실 북의 ‘통일 유보’는 일찌감치 감지됐다. “남조선 당국은 제도통일의 허황된 꿈을 버려라”(2016년 7차 당대회)가 이를 웅변한다.

이런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통일은 50~100년 후 이 땅을 살아갈 남북 후손들의 결정에 맡겨놓으면 된다. “남북을 일반국가 관계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분단 75년, 한 민족이라지만 이질화가 심각하다. 한 민족 두 국가로 상호 침략을 포기하며 평화 선린을 추구하면 된다.”(이남곡)

핵무력에 집착하는 북 리더십의 교체는 당분간 무망하다. 핵의 북은 내부 균열로 무너지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개방을 추구하는 합리적 리더십이 북에 설 때까지, 힘에 바탕한 평화의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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