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소리 집중①] “잠들기 전 두 시간은 독서를 했다”

물총새 <사진 배일동>

나는 처음부터 산 공부 장소를 폭포로 택하지 않았다. 선암사 운수암으로 가기 전에 시험 삼아 지리산 고기리에 있는 폭포에서 한 달 정도 공부했는데 공력이 약해 기가 센 폭포에서 오래 머무르며 공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운수암에서는 일부러 기세가 평범한 개울로 정했다. 선암사에서는 그야말로 끼니도 잊고 소리에 몰두했다.

잠자는 시간 네 시간 빼고는 온종일 소리만 했고, 잠들기 전 두 시간은 독서를 했다. 모두 판소리의 이치를 깨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었다. 소리를 하다 모르는 이치나 원리가 나오면 반드시 책을 뒤져 확인했다. 입산할 때 11월 초였으니 날씨가 조석으로 꽤나 쌀쌀했다. 잠과 식사는 암자에서 해결하고 공부는 초막에서 했다. 소리가 잘될 때에는 초막에서 밤을 새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초막에서 자는 날이 많아졌다.

드디어 산에서 맞이하는 첫 겨울이 왔다. 겨울 공부가 매우 힘든 줄 알고 잔뜩 긴장했지만, 의외로 집중이 잘되어 공부가 수월했다. 특히 눈이 자주 내렸는데 바위나 나무, 산죽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이 산속 풍경을 더욱 운치 있게 해주었다.

내 경험으로는 산 공부 하기에 가장 좋은 때가 바로 겨울이었다. 적막강산에 인적은 드물고 낙엽은 다 떨어져 온 산이 텅 비어서,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면 먼 곳까지 훤히 내다보였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또렷하고, 만물이 고요해 화두를 잡고 집중하기에 가장 좋았다.

여름엔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토해내야 할 때이지만, 한편으로 보면 기력이 바닥나기 쉬운 계절인 만큼 공부량을 잘 조절해야 한다. 여름 산중은 비도 자주 오고 늘 축축하여 건강을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사계절 모두 나름의 풍경 속에 운치가 있어 그때 그때 떠오르는 영감이 모두 새롭고 새로웠다.

처음엔 소리를 하다 보니 금세 배가 고파져서 궁리 끝에 들깨를 구해다 새참으로 한 움큼씩 날것으로 씹어 먹었다. 여름과 가을엔 산더덕과 도라지, 머루, 다래, 오미자, 쥐밤, 산마 등 간식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캐고 따서 먹었다. 봄과 겨울엔 산중에 채취할 게 없어 순천 사는 친구 취산 조영수 화가에게 참마를 구해달라 해서 꾸준히 챙겨 먹었다. 그 친구 신세를 참 많이 졌었다.

산 공부에 들어가는 경비는 인근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하는 분에게 소리를 가르쳐주고 받은 학채로 충당했다. 이런 생활은 지리산 공부까지도 쭉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이 소리 공부의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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