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소리 집중⑤] 스승의 지도는 분명 옳았으나
산중에는 도 닦는 이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구도의 열정이 같은 터라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운수암 건너편에 북암이 있었는데, 그 암자에는 전통 무예인 기천무를 수련하는 도인이 기거해 서로 왕래하며 공부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호흡이 무엇인지, 기의 소통과 행공(行功) 등이 무엇인지 서로 묻고 알아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생각하면 여러모로 공부가 설익은 상태여서 자칫하면 샛길로 빠질 뻔한 위험하고 그릇된 식견들이 꽤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망상에 사로잡힐 틈도 없이 소리만 죽어라 열심히 해서 그러한 것들이 그냥 묻혀갔다는 점이다.
도심을 잡고 공부하는 이들은 공부하는 중에 호흡법이라든가 기의 운용 등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럴 때 잘못된 습(習)이 몸에 배면 큰일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실제로 산중에는 평범치 않은 사람들이 기거한다. 무슨 도인지는 몰라도 도를 닦으러 오는 사람, 무술을 연마하러 오는 사람, 약초꾼, 무속인, 요양하러 오는 사람, 세상을 피해서 오는 사람 등 평범치 않은 이들이 주로 온다. 웃긴 이야기 같지만 그런 사람들 틈에서 명철하게 공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굳은 심지를 따르고 선현들의 가르침을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다. 어쨌거나 산중에서 나 홀로 공부하면 적적할 텐데, 길은 달라도 도를 찾는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각자의 수련을 통해 깨쳐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운수암에서 2년 넘도록 공부하다가 성우향 명창에게 한 달 정도 소리를 다듬을 요량으로 잠시 산을 내려왔다. 스승을 뵙고 지도받는데, 소리에 힘만 잔뜩 들어가 있다면서 힘을 다 풀라고 하셨다. 사실 그때는 강도근 명창의 억센 동편 발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스승은 그 발성이 부드럽지 못하니 힘을 빼고 수수하게 소리를 쭉쭉 밀어가라고 일러주셨다.
하지만 이미 몸에 밴 습관은 쉽게 바꿀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보름 정도 있으면서 공부하는데 불현듯 ‘내가 기운을 완전히 얻지도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다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우선 속이 꽉 찬 아름드리 통나무를 만든 후에 치목을 해서 써야지 아직은 턱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날 스승께 말씀드리고 다시 산으로 들어가겠노라 했다. 스승께선 소리를 더 다듬고 가라 했지만 난 그길로 곧장 운수암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열심히 정진했다.
그때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스승의 지도는 분명 옳았으나, 그러한 것도 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스스로 더욱더 절차탁마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