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일동의 소리 집중⑥] 꼿꼿이 서서 하루 8시간씩 5년간…

<땡큐마스타킴> 영화감독 엠마 프란츠(Emma Franz)가 일동폭포에서 수련하는 배일동 명창을 촬영했다.

운수암의 체험 덕분에 이젠 산중이 낯설지 않고 내 집 같았다. 공부 방법은 운수암 시절과 같았으나 숙식은 한결 좋았다. 소리를 하려면 먹는 것도 중요하다. 채식만 하면 몸이 부실해져서 강도 높은 수련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다.

달궁에서는 묵었던 집 주인 이순봉씨 부부의 인심 덕택으로 간간이 기름진 음식도 포식했다. 산사에서는 모든 게 단출했지만, 달궁은 세속이라 사람 사는 일도 겪으면서 나도 조금씩 동네 사람이 되어갔다. 또 달궁에선 체력 안배에 신경 써가며 소리를 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주 토요일은 하루 코스로 등산을 하며 체력 관리를 했다.

그때는 하루 종일 일어나 북채로 바위를 치고 소리를 내지르며 연습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하체 훈련이 필요해서 가끔씩 산을 올랐는데, 등산은 여러모로 유익했다. 바위에 대고 소리 지르는 것은 순전히 스승 강도근 명창의 가르침이었다. 언젠가 스승께서 독공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바위에 대고 소리를 하면 돌의 단단한 성질을 닮아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가 철성(鐵聲)이 끼고 딴딴해지면서 탱글탱글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했고, 스승의 방법은 역시 옳았다. 우선 소리를 허공에 대고 지르면 기운이 퍼져 감당하기 어렵고 연습을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위에 대고 연습하면 기가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력이 좋아져서 잡념도 안 생기고 하루 종일 소리를 해도 무리가 없었다.

게다가 서서 소리를 하면 상하 단전의 기 흐름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몸의 구심점이 상단전과 하단전에 확실히 잡혀 힘을 균형 있게 쓰기 때문에 여러모로 소리가 나아졌다. 머리끝과 발끝까지 몸의 모든 기력을 상하 단전으로 끌어당겨 모으니,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 몇 배의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꼿꼿이 서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5년만 수련하면 상하 단전의 기가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특히 하단전에 힘이 모이는 느낌이 있는데, 초심자는 아직 기력이 약해서 온몸의 기를 하단전에 모은다는 생각만 할 뿐이지, 실제 단전에 모이는 기는 매우 약하다.

기는 공력이 붙을수록 기운이 긴밀해지고 마치 쟁반만 한 크기에서 콩알만 하게 똘똘 뭉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느낌은 체험으로 얻는 것이어서, 말과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고도로 응축된 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 기를 단전에 모아 응축시키기 위해서 공력을 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커다란 기의 덩어리이다. 그 기의 덩어리 속에 온갖 만물이 존재하며 나름대로 자기의 기를 구축하면서 살아간다.

예술은 기의 용량에 따라 밖으로 펼쳐지는 예술의 형태미나 정감이 달라진다. 예술은 단순히 힘으로만 운용되는 것이 아니지만, 힘과 뜻이 균형을 이루면 소리의 시김새나 감정의 흐름이 여유로워져 마음먹은 대로 표현하고도 남음이 있다.

도랑물로는 천만(千萬)의 인구(人口)를 감당키 어려운 법이다. 큰 댐을 이루어야 쓰고도 남음이 있게 된다. 기가 원만해야 예술 기교도 윤기가 흐르니 기운을 모으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갈고닦아야 한다. 소리꾼은 그 힘을 얻기 위해 천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행운유수(行雲流水)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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