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야구 심판과 포수, 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 있을까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것을 ‘나비효과’라고 부른다. 갑자기 ‘심판아카데미’와 ‘포수관’의 나비효과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소개하는 다음 사례를 통해 이 나비효과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태동했는데, 그 해 11월 만들어진 심판아카데미도 나란히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나는 어쩌면 가장 가까이 심판들과 함께 한 선수 중의 한 명이다. 야구 하면서 은퇴할 때까지 대부분 포수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라오스 대회에 심판 재능기부를 해준 한 분이 나에게 이런 글을 보내왔다.
“포수는 심판(주심)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입니다. 공을 잘 막아주는 포수가 아니라면 주심도 심판을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피하기 바쁘죠. 타자가 스윙한다고 미트를 공 오는 곳으로 갖다 대지 않는 포수라면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한두 번 그런 공에 맞으니 더욱 그런 포수가 무섭습니다. 주심은 글러브가 없으니 그 공을 그대로 맞습니다. 무거운 장비를 차고 팀에서 가장 어려운 역할을 하는 포수가 가장 많은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투수가 아무리 공을 잘 던지고, 빠르게 던진다 해도 그걸 처리할 포수가 없다면 투수의 능력을 돋보이게 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한편으로는 포수의 포지션을 이렇게 각별하게 생각해주는 심판이 고마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예전 생각들이 떠올랐다. 스포츠 경기 중에 이렇게 심판과 근접한 거리에서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우는 포수와 주심이 유일하다. 서로의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볼 판정에 대한 무언의 대결까지 포수와 심판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현역시절을 돌아보면 경기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매니저에게 오늘 주심이 누구인지를 물어 본 기억이난다. 그날 주심의 성향에 따라 당일 경기의 볼 배합 운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심판들의 성격이나 성향 그리고 그 심판이 선호하는 스트라이크 존이 다르기 때문에 야구 일지에 일일이 심판항목을 메모해 놓았다. 그 자료가 선수시절 은퇴할 때까지 집대성처럼 쌓였다.
이렇듯 심판 역할의 중함을 알기에 나름의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몇몇 분들과 지금까지 유대관계를 갖고 지낸다. 이런 관계로 인해 야구 불모지인 동남아시아 라오스라는 나라에 2013년 라오J브라더스 야구단을 창단하고부터 지금까지 가장 먼저 헌신적으로 재능기부 하고 봉사한 분들이 심판들이다. 지난 7월말 제1회 베트남 내셔널컵 야구대회에서도 자기 일처럼 11명의 심판진이 자비로 호치민까지 들어와 열정적으로 전 게임을 다 소화해 주었다.
앞으로 심판아카데미에서도 심판진들의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 하나가 라오스와 베트남에 심판아카데미 프로젝트 계획을 갖고 있다. 야구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심판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지금도 한국의 심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아직 헐크파운데이션재단이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국제대회를 열 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들은 언제나 자기 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도움을 주고 또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있다.
이들의 작은 헌신과 봉사들이 합쳐져 라오스와 베트남 야구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 있을 인도차이나반도의 많은 나라들이 야구에 관심을 갖고 주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오고 있다.
라오스에서 시작된 작은 날갯짓이 지금 베트남에서 큰 폭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라오스에서 보이지 않는 야구규칙집을 만들어 낸 것부터 대회 진행까지 많은 이들이 작은 날갯짓을 만들어 내었다. 그 날갯짓의 작은 바람이 베트남에 큰 광풍을 만들어내고 있다.
나는 그 현장에서 나비효과가 불러운 세찬 바람을 몸으로 실감했다. 헐크 이만수의 강력한 힘이 아니라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더해져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들이 실제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더 강력한 폭풍이 되어 인도차이나 반도에 야구 광풍이 큰 한류의 물줄기로 이어질 것임을 나는 직감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야구인의 숙명 같은 의무로 그들에게 한국야구와 문화를 심어주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