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발달장애인도 야구 맘껏 할 수 있어요”

11월 23일 서울 애화학교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티볼시범대회에서 경기를 마친 서울애화학교와 강서누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티볼팀 선수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출처 뉴스프리존>

[아시아엔=조일연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회장]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 중에서 어느 것이 최고인가? 단순하고 유치할 수도 있는 우문이지만, 나는 단연코 야구라고 대답할 것이다. 농아학교에 고등부 야구팀을 창단해서 농아인들을 야구의 세계로 이끌어온 필자의 입장은 이렇게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야구를 최고의 스포츠로 꼽는 사람들은 필자 말고도 엄청 많다. 평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잠실야구장이나 고척돔 혹은 인천, 부산, 대구, 창원의 야구장을 찾는 프로야구 마니어들은 야구 이외에 다른 스포츠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해는 야구 하는 날과 야구 없는 날로 나뉜다.

야구를 예찬하는 글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조갑제씨가 쓴 글이 특별하다. 조씨는 축구와 야구를 비교해서 “축구는 산문적(散文的)인데 반해서 야구는 시적(詩的)이다”라고 했다. 산문적, 시적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의미는 아닐지 몰라도 조갑제씨는 자기 나름대로 스포츠 종목의 등급을 매겨 그리 표현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야구를 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한국, 대만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야구는 자본주의 국가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다. 남미의 멕시코나 푸에르토리코, 쿠바 같은 나라에서도 야구가 성한데 남미 국가의 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한국 프로야구에 선수 수요를 감당해주는 공급원 역할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자본주의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근자에 들어서면서 새롭게 변모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20여년 전 시작된 한국의 농아인 야구가 대표적이다. 듣지 못하는 장애로 인해서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살아온 농아인들에게 야구는 삶에 즐거움을 주는 한편, 많은 농아 청소년들이 야구를 통해서 사회 주류계층으로 진출하려는 아주 특별한 희망의 끈이 되고 있다.

이갑용 한국발달장애인소프트볼야구협회 회장, 이만수 명예회장, 조일연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회장(왼쪽부터)

그런가 하면 헐크재단의 이만수 이사장(전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감독)이 주도하는 리카버리(Recovery) 야구단의 활동도 있다. 리카버리 야구단은 노숙인들이 모여서 만든 야구단이다. 그들이 스스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야구를 통해서 희망을 갖고 인생을 개척하도록 격려해주려는 이만수 감독 등 선한 야구인들이 주도해서 만들고 뒷바라지 해주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중에는 노숙인만이 아니라 조현병으로 인해서 일상의 삶이 무너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야구의 커다란 효용과 무한한 확장성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장애인계에 야구와 관련된 희소식이 전해진다. 발달장애인야구협회가 지난해 말 창립되었는데, 지적 발달지체 또는 자폐성 장애로 교육과 재활에 근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을 야구 활동에 참여시킬 것이라고 한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야구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현재 한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평생교육과 복지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학령기 이후의 발달장애인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어서도 취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돼 주로 가정에 머물거나 복지시설에 수용되어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가정에서 평생을 머무는 경우 가족이 짊어지는 부담은 엄청날 것이며, 복지시설에서 생활한다 해도 대부분 보호 및 수용 차원인 것이 현실이다. 그들 삶의 질은 상당히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있는 발달장애인들에게 주어지는 야구는 어쩌면 아주 커다란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복잡한 룰을 단순하게 변형시킨 야구든, 고무공으로 하는 소프트볼이든, 또는 티볼이든 간에 야구는 그들의 삶에 아주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능력으로 공을 던지고 때리고 달리다 보면 신체를 움직임으로써 얻는 즐거움이 나날이 커질 것이다. 경기에 심취하다 보면 승리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이기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훈련하게 된다. 또 다음 시합을 준비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생활의 패턴으로 자리잡는다면 몸이 달라지고 마음이 활발해지고,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다.

특수교육이나 국가의 사회복지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야구가 풀어줄 수 있을까. 발달장애인야구협회의 활약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필자 조일연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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