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정치이야기⑥] 계파싸움뿐 절박함 없는 더불어민주당
“우리가 하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민우 신한민주당 총재가 1985년 한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전두환 정권의 학원안정법 파동 때 한 말입니다. 학원안정법은 ‘미국문화원 점거농성’과 삼민투위 사건, 대우자동차 파업, 구로 동맹파업, <민중교육>지 사건 등 거세진 저항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권이 추진했던 강경 대책이었습니다.
학원안정법의 골자는 학원의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학생을 최장 6개월 동안 선도교육을 하고, 이 과정에서 최장 15일 동안 일정한 장소에 보호 위탁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말이 좋아 선도교육이고 보호위탁이지 운동권 학생들을 영장 없이 바로 체포한 뒤 ‘15일간 감금’해 ‘삼청교육’ 같은 방식으로 손을 보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이세기 민정당 원내총무는 “학원안정법이 ‘괴물’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순진한 양떼를 지키는 목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전국대학 총·학장 134명이 지지를 결의하는 ‘비교육적 망동’(김준엽 전 고대총장의 비판)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재야진영의 반대가 격렬해 허문도 정무수석이 제안해 추진됐던 학원안정법은 철회됐습니다.
제도권 야당과 재야, 사회운동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 전두환 정권은 야당 총재들을 만나는 모양새를 갖춘 뒤 학원안정법 제정을 포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권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5공 정권이 “민심에 무릎 꿇은 첫 사례”라고 평가받았습니다.
정일준 고려대 교수는 정권이 밀린 것 같지만 ‘벼랑의 정치’를 추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통치전술의 일환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제도권 야당과 학생운동 사이에 쐐기를 박아 학원문제에 대한 야당의 태도변화를 끌어냈고, 시민에게 학원문제의 심각성을 알렸고, 대통령의 극적 결단을 강조함으로써 권위 훼손을 막았다는 겁니다.
학원안정법 파동 때 이민우 총재의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은 24보안법파동 때 나왔던 말입니다. 제3대 대통령선거 때 민심이 돌아선 걸 확인한 이승만 정권은 정권유지를 위해 1958년 8월 국가보안법을 강화시키려 했습니다. 야당은 반대세력과 언론 탄압수단으로 악용될 거라며 반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막지 못했습니다.
야당과 무술경관을 국회에 투입해 야당의원들을 감금하고 국회의사당 정문을 폐쇄시킨 채 여당의원들만 출석시켜 3분만에 법을 통과시킨 겁니다.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추진했고 국회는 여대야소였으며 시민이 반대했다는 조건은 같았지만 학원안정법 제정은 실패했고 국가보안법 개정은 성공했습니다. 절박함의 차이였을까요?
제21대 국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수의 정치’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제2당인 국민의힘에 끌려 다녔습니다. 전반기 2년 동안 내세울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제19대 국회 막바지에 필리버스터로 배수진을 쳤으나 저지하지 못했던 테러방지법 개정을 제1당이 된 제20대 국회에서도, 과반을 훌쩍 넘긴 제21대 국회에서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절박함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검찰개혁도 정권 교체가 거의 확정적이 된 뒤에야 허둥지둥 추진했으나, 국민의힘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선 패배 이후 한 번, 지방선거 이후에 또 한 번 비대위를 두 차례나 꾸렸지만 당권을 겨냥한 계파싸움만 두드러질 뿐 절박함이 드러나질 않습니다. ‘대통령을 처음 해 보는’ 미숙한 윤석열 정부가 국정운영을 제대로 해나가도록 견인해야 할 야당으로서의 절박함이 더불어민주당이 살 길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살아야 정치가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