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10] 정치 신데렐라 윤석열 정권심판론 부응할까?
시민들은 투표할 때가 아니면 정당의 강령이나 정책 등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시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주로 정치권 내부의 역(力) 관계입니다. 누가 진정한 실력자(실세)인가, 파벌(계파)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고 파벌 간의 갈등 협력 관계는 어떠한가 등에 더 흥미를 갖습니다. 단일화에 대한 관심도 이런 경향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시민은 정당의 정강 정책보다는 그 정당을 구성하는 인물에 더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정당들이 시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결성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지고, 운명을 함께 했다는 정당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당보다 인물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겁니다.
정당이 아닌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치는 ‘국외자 효과(outlier effect)’가 커집니다. 국외자효과란 정당 내부에서 인물을 길러내지 못하고 정당 밖, 나아가서는 정치권의 인물에게 기대는 경향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말합니다. 흔히 ‘영입’, ‘새로운 피 수혈’이라고 포장하지만 자꾸 정당 외부에 기대게 되면 정당정치는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물 영입의 기준은 오직 하나 ‘당선 가능성’입니다. 공인으로서의 자격이라든가 선출직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능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흠결이 많은 이도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면 그 문제점에 눈을 감게 됩니다. 인기투표로 정당을 이끌어가고 국가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는 셈입니다.
어찌 보면 정당 등 정치권의 자업자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게 시민이 열광하는 건 정당과 기존 정치지도자들이 시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파행으로 얼룩진 지난날의 우리 정치, 합리적이지 않은 정책 결정 등이 시민들에게 정치 불신을 심어준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은 정치권 밖, 자신의 분야에서 창의성 등을 바탕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인물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정치 영역에서도 같은 성과를 내 달라는 기대입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고건 전 총리,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정몽준 전 의원, 안철수 후보, 윤석열 후보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고건 총리와 정운찬 총장은 시민 앞에 나설 기회가 없었습니다. 문국현 사장은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했으나 시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의 주인공인 안철수 후보도 스스로 정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이번 대선에 다시 출마했으나 이번에도 조연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5선 국회의원이면서도 아무런 정치적 업적이 없던 정몽준 의원은 2002년 월드컵 4강에 힘입어 단숨에 대선후보로 떠올랐습니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축구 변방국을 월드컵 유치와 4강까지 진출시킨 능력이면 정치를 잘 하리라는 시민의 기대가 컸던 겁니다. 정 의원도 끝내 시민의 선택을 받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국외자 효과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단연 정치적 신데렐라 윤석열 후보입니다. 정치 입문 몇 달 만에, 투표 며칠을 앞둔 현재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가고 있습니다. 국외자 효과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기득권 구조 때문에 어려운 개혁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는 위임민주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약점이 더 커 보입니다.
위임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거쳐 선출돼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최고 지도자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면서 시민에게는 책임을 지지 않는 현상입니다. 윤석열 후보를 영입한 국민의힘도, 윤 후보를 통해서 정권을 심판하고 싶은 지지자들도 자질과 능력 부족 논란이나 갈수록 거칠어지는 막말에 관대한 게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