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재의 대선 길목 D-13] 안철수 향한 지치지 않는 단일화 구애
‘지금 우리 학교는’(감독 이재규)을 아십니까? 넷플릭스를 통해 인기몰이 중인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입니다. 지금은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3위지만 지난 1월 28일 공개 직후부터 15일 동안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오징어게임'(감독 황동혁)은 46일간 1위를 지켜 넷플릭스 드라마 가운데 최장기간 연속 세계 1위였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드라마입니다. 한 고등학교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고립된 학생들이 구조의 손을 기다리며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의 영어판 제목은 ‘All of Us Are Dead'(우리 모두 죽는다)입니다. 서아프리카의 부두족이 믿는 종교인 부두교에서 유래했다는 좀비(zombi)의 뜻은 ‘살아 있는 시체’입니다.
좀비 영화가 유행하면서 주체성이 없이 로봇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좀비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타성에 젖어 기업을 경영하는 대기업의 관료화 현상을 좀비로 부르기도 합니다. 관료화된 사회 조직에서 무사안일주의로 일하는 직장인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창의성이나 도전정신 없이 요령과 처세술만 익혀 무사안일주의로 살아가는 걸 비꼬는 겁니다.
선거 때만 되면 되살아나 논란이 되는 후보단일화도 좀비를 닮았습니다.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때, 손쉽게 택하는 방법이 바로 단일화 추진입니다. 시민의 관심과 지지를 더 끌어낼 수 있는 정책이나 가치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단일화의 정당성에 대한 고민도 없고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필요성과 가능성, 손익 여부만 따집니다.
언론도 으레 후보단일화를 선거 판도를 바꿀 가장 중요한 변수로 거론합니다. 후보들이 확정되어 실질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언론들은 일제히 후보단일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단일화 보도의 초점은 안철수 후보에게로 모아졌습니다. 안 후보가 단일화를 계속 부인하는데도 언론은 단일화에 계속 관심을 가졌습니다.
언론이 관심을 갖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모든 대선에서 단일화가 추진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일화는 성사되기도 하고, 불발되기도 했습니다. 단일화가 대선 승리로 이어지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부 보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단일화를 부추기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대선 후보 등록 첫날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던 안 후보가 자신의 제안에 대한 공식 응답이 없자 1주일 만에 결렬을 선언한 겁니다. 그런데 언론은 안 후보가 “입장을 바꿨다”는 논조로 보도하면서 “대선판이 워낙 역동적이라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다고 여지를 남겼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완주 의사를 밝혔지만 국민의힘은 단일화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단일화를 둘러싼 신경전이 폭로전으로 번지면서 단일화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발단은 유세차 사망사고 직후 ‘고인 유지’ 발언 등 이준석 대표의 안 후보에 대한 비아냥성 발언이었습니다.
당 안팎의 비난에도 이준석 대표는 계속 안철수 후보 비판을 이어갔고 마침내 ‘국민의당 내부 배신자’ 발언까지 했습니다. 이에 반발해 이태규 국민의당 총괄선대위원장이 “이준석 대표가 안 후보 사퇴를 전제로 합당과 안 후보에 대해 향후 공천 등을 보장”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대표도 기자회견을 통해 이태규 위원장의 폭로내용을 해명했습니다.
내심 긴장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안도하면서 책임이 국민의힘에 있음을 부각시켰습니다. 나아가 대통령 4년중임제 개헌과 대선 결선투표 도입, 책임총리제 법제화, 다당제 도입 등 정치개혁을 거론하고 나섰습니다. 안 후보 지지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처럼 실체가 없어도 단일화는 대선의 변수로 계속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좀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