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이런 날이 오다니”…최초 공식 야구국가대표팀 최종 명단 확정
2011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SEA 게임에 역사상 최초로 베트남 금성홍기를 달고 베트남 야구대표팀이 출전했다. 물론 공식적인 베트남야구협회가 만들어지기 전 초청국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10년이 훌쩍 지나는 동안 베트남 야구는 국제무대에서 얼굴을 비치지 못했다. 이제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드디어 국제대회에 당당히 정식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을 앞두고 있다.
내가 베트남야구협회 고문으로서 활동하면서 최근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베트남에서도 야구를 하나요?”이다. 그만큼 생소하다는 말이다. 축구의 나라. 온 국민이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무더운 베트남에서 야구를 한다는 것은 소수 야구를 미리 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며, 희소성 높은 스포츠 종목이었다.
전국에 야구용품 전문 판매점이 하나도 없어 외국에서 야구용품을 사는 것이 베트남 야구의 현주소이다.
한국에서 스키점프를 하고, 루지, 스켈레톤을 하는 동계올림픽 선수들을 언론을 통해 접하며 왜 많은 종목 중에서 인기도 없는 저런 종목을 선택해서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가졌던 감정과 지금 베트남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마 똑같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면서 야구는 내 인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전문적으로 야구선수로서 활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와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아 목청 높여 응원하고, 스포츠 신문에 나온 프로야구 선수들의 성적을 마치 내 학교 성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리그에 빠져 마치 프로선수가 된 마냥 목숨 걸고 야구 시합을 하기도 했다.
체육수업에는 접목하기가 힘든 야구를 티볼, 소프트볼, 야구로 구분하여 1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며 야구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근무하고 있는 중학교에서는 학년 전체 학생 중 거의 과반수가 글러브를 사고,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남학생, 여학생을 불문하고 야구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심지어 부모님과 함께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자랑하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되었다. 횡설수설 내 야구 역사를 털어놓는 이유는 이제 베트남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야구대표팀 선발전. 거창한 타이틀로 시작한 3일간의 여정은 그야말로 내게는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협회 창설을 돕고, 베트남 야구선수와 교류하면서 꼭 금성홍기를 단 야구유니폼을 입고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그들을 보고 싶었다. 그 주인공을 뽑는 선발전은 그야말로 열정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대표팀 승선을 꿈꾸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친 그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떨리는 손으로 작성한 베트남 야구대표팀 최종 명단을 협회에 송부했다. 마지막 자판을 누르는 순간까지 떨림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명 한명에게는 정말 꿈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다. 박효철 감독과 며칠을 마주 앉아 회의했고, 어제는 협회장과 오랜 시간 선발전과 향후 베트남 야구대표팀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 박효철 감독이 맡은 베트남 야구국가대표팀은 비상을 시작한다. 그는 항상 베트남 대표팀만의 성적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국가의 야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뿌리(학교스포츠), 줄기(생활스포츠), 열매(국가스포츠)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즉, 야구 전파에 더 힘써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아마도 그는 그 누구보다도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에 진심인 사람이다. 베트남 최대명절인 뗏(설날)을 앞두고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부푼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선발전에 참가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 마음은 더 그러할 것이다. 이제 그들은 베트남 야구의 역사가 될 것이다. 그들이 써 내려갈 베트남 야구 역사에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