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스포츠, 부모-자녀 하나로 잇는 ‘무너지지 않는 다리’

경북 의성 어린이야구팀과 학부모들 모두…

어제(2월 4일) 아침 우연찮게 동영상을 보면서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게 되었다. 2019년 8월 HBC 유소년팀과 선수들 그리고 권혁돈 감독과 한상훈 감독하고 같이 경북 의성으로 내려가 2박3일 동안 재능기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난다.

경북 의성은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바로 그 곳에서 HBC 선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 평소 아끼는 후배인 권혁돈 감독의 부탁으로 의성군에 방문해서 지역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주는 재능기부시간을 가졌다.

이만수(가운데) 감독이 권혁돈 감독 등과 함께

권혁돈 감독의 취지는 다름이 아니라 도시보다 야구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경북 의성 어린이 대상으로 야구를 가르쳐 주고 싶다며 함께 하자는 것이다. 일단 경북 의성과 예천 그리고 가까운 안동까지 지역 어린이 대상으로 야구를 통해 함께 지역사회를 구성하고 또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통해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HBC 선수들과 야구를 좋아하는 의성 어린이들이 양팀으로 나누어서 게임을 했다. 의성 유소년야구팀은 엘리트선수 없이 순수하게 취미로 하는 어린이들이 모인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야구에 소질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았다.

이날도 벤치에 50여명의 부모님이 앉아 있었는데 자녀들보다 더 열광하고 응원하는 것은 그들이었다. 대부분 부모님들은 야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계시는 분들이라 자기 자녀가 2루타인데 한 베이스만 가면 벤치에서 그라운드로 뛰어 나와 “빨리 한 베이스 더 가라”며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것이다. 스포츠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옆에서 선수들과 학부형들이 열심히 운동하고 응원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권혁돈감독이 나를 부르는 것이다. HBC 선수들과 스탭진 그리고 야구를 좋아하는 의성 어린이 야구단 30명, 마지막으로 50명이 되는 학부형들과 군수님이 계시는데 권혁돈 감독이 “이만수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타석에서 타격시범을 보여 줄 것입니다” 하며 소리 높여 이야기 하니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든 선수들과 학부형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포수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재능기부 하러 다니느라 양쪽 어깨인대가 여러군데 끊어진 상태다. 연일 바쁜 일정으로 수술 날짜를 계속 미루고 있던 중이라 내가 좋아하는 배팅 볼 던져주기와 타격시범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 있는데 갑자기 권혁돈 감독이 “이만수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타격시범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할 때 무척 난감했다. 이렇게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다리는데 안 할 수도 없고 과연 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일단 야구배트를 잡았다.

첫타석 파올 볼 칠 때 솔직히 왼쪽어깨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팠다. 그래도 어린아이들이 옆에서 ‘이만수 이만수’ 하며 외치는데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시 두번째 타격하는데 또다시 파올 볼을 쳤다. 마찬가지로 어깨가 아파 힘들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 다시 도전했다.

마지막 3번째 타격했는데 거짓말처럼 너무 잘 맞아 홈런을 쳤다. 다이아몬드 한 바퀴 도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현역시절 수백개의 홈런을 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이 있었다.

나는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야구복만 입으면 땀나는 것조차 신나던 선수였다. 아주 오랫만에 쳐 본 홈런의 손맛이 얼마나 좋은지 잠깐이나마 현역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나는 야구할 때가 가장 즐겁다.

이제는 이런 모든것들이 하나의 추억이 되고 있다. 작년 12월 14일 대구에 내려가 모교 후배들과 졸업생 선배들과 경기했다. 이날 경기 장면을 지인이 찍어서 보내주었는데 65살의 스윙이 맞는지 솔직히 나 자신도 깜짝 놀랬다. 아내와 함께 동영상을 보면서 아내 왈 “젊은 시절 승부욕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변화지 않는다”고 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나는 환갑을 훌쩍 넘긴 60대 후반의 물리적 나이에도 20대, 30대 젊은 열정으로 야구만을 생각하고 있다. 야구만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힘이 솟아나고 마음이 설렌다.

문득 자다가도 내가 꿈꾸고 생각했던 동남아시아 야구의 생각이 뇌리를 스치면 갑자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벌떡 눈을 뜨게 된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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