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삼성 라이온즈 룸메이트 성준 투수의 ‘멋진 새해 선물’
지난 달 설 명절 연휴 첫날(21일) 아침 대구에 있는 성준 후배로부터 멋진 동영상을 받고 계묘년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성준 후배가 보낸 동영상은 1991년도 LG 트윈스팀과의 경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성준 투수하면 템포가 너무 느려 타자나 심판 그리고 관중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각오를 갖고 경기를 지켜 보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동영상을 보니 성준 투수가 템포가 느리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성준 투수가 삼성라이온즈 팀에 입단할 때 구속이 상당히 빨랐다. 지금 생각하면 왼손투수가 시속 145km 가까운 무브먼트가 좋은 볼을 던졌으니 신인투수로 얼마나 뛰어나고 좋은 구질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성준 투수의 주무기인 빠른볼과 예리한 슬라이드에 낙차 큰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은 정말 좋은 조화를 이뤘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 보기 드문 멋진 구질이었다. 다양한 구질을 갖고 있는 성준 투수는 오른손 타자나 왼손 타자 가리지 않고 정말 빼어난 투구를 했다.
많은 선수들이나 심판 그리고 팬들은 성준 투수가 신인 때부터 템포가 느렸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준 투수와 오랫동안 같이 배터리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언제부터 템포가 느려졌는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성준 투수의 템포가 느려진 것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점차 구속이 줄어들자 프로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성준 투수는 젊은 시절 너무나 다이나믹하고 멋지게 잘 던졌다. 그는 도망가는 피칭을 한번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타자와 맞섰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프로야구 초창기 왼손 투수가 145에 가까운 살아 있는 볼을 던지는 것은 흔치 않았다. 그러다 구속이 떨어지자 인터벌 투구에 관심을 가지면서 타이밍을 뺏는 투구 전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일종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성준 투수가 1986년 삼성라이온즈에 입단하고부터 오랫동안 룸메이트로 함께 생활했다. 그와 같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성준 투수의 성품을 알게 되었다.
나는 53년이란 세월 동안 오로지 한길로 걸어오면서 수많은 야구인들을 보고 만났다. 성준 후배가 나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북고와 한양대를 졸업하고 1986년 삼성 라이온즈팀에 입단하고부터다.
1986년 삼성에 입단하자마자 룸메이트로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성준 후배의 성품을 하나씩 알게 되었다. 언제나 조용하고 혼자서 공부하는 학구파였다. 거기다가 성품 또한 유순하고 온화했다. 그를 좋아하고 따르는 선수들이 많았다.
성준 후배는 일본어와 영어를 꾸준히 독학했고, 실제로 현역 시절 잦은 일본 스프링 캠프 등을 통해 일본 프로야구를 좀더 가까이 하는 혜택을 갖기도 했다. 뛰어난 언어 소질이라기보다 한문도 많이 공부하는 학구파였다. 특히 성준 후배는 야구에 대해서 만큼은 어느 선수들보다 뛰어날 정도로 열정적이고 혹 본인이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후배나 선배 가리지 않고 찾아가 꼭 알아내는 스타일이었다.
성준 후배의 연구, 노력하는 자세는 지도자가 된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며 선수들과 교감하며 발전해 나갔다. 그런 성준 후배가 삼성 라이온즈 팀으로부터 2019년 10월 1일 계약불가 통보를 받게 되었다. 내게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물론 지도자나 선수들 인사권은 구단의 고유권한으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단지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질과 능력 많은 야구인이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나라 프로야구로서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나이가 많지도 않고 앞으로 수년 동안 현장에서 훌륭한 선수들을 얼마든지 발굴하고 도움 줄 수 있는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노하우를 KBO에 전수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애석하기만 했다.
평생 바른 길을 성실하게 걸어온 성준 후배는 현역이나 지도자 시절처럼 어떤 일을 하더라도 변함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철학대로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