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설명서①] 상상 속 탐정, 뒤펭-홈즈-포와르
도둑이 도둑 잡아먹고
[아시아엔=김중겸 전 경찰청 수사국장,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현상금 사냥꾼(bounty hunter), 하와이에서 봤다. 예술품과 골동품 제외하고는 액수 작아 수지맞지 않는다.
도둑 잡는 실적은 어느 나라나 30%가 정상이다. 50~60% 나가는 건 통계조작이다. 들어오는 신고 돌려보내거나 축소하는 거다. 잡으면 몇 건 더 얹는다.
형사가 바빠서 손댈 짬 없을 테고 강절도 날뛰던 시절 영국 런던에선 2000명 가량이 도둑업으로 먹고 살았다. 이들 잡아오면 돈 줬다.
도둑잡이(thief-taker, thief-catcher)다. 그 중 최고 악명 떨친 자 조나단 와일드(Johnathan Wild) 잡아서 정부수당 받았다. 주인이 찾아달라고 하면 전용 장물창고에서 장물 가져왔다. 수고비 받고 반환하는 거다.
엉뚱한 시민을 도둑으로 만드는(thief-making)이기도 했다. 1714년부터 1724년까지 10년간 잘 먹고 살았다. 과욕이 적을 만들었다. 1725년 체포돼 교수형에 처해졌다.
현실 속 탐정-전과자가 형사로
13세부터 절도로 잡힌 후 가출, 귀향, 군 입대, 탈영, 재입대, 귀환, 감옥, 탈옥, 체포, 다시 투옥의 악순환.
1809년 34세에 “제대로 살아보자” 해서 택한 직업이 감옥 안 경찰정보원이었다. 수감자들의 거동을 파리경찰청에 보고했다. 정확하고 타이밍 맞았다. 성과 거양(擧揚)!
1811년 봄 36세에 출소. 심복 전과자로 범죄정보수집팀 꾸렸다. 사설(私設)이었다. 첩보는 계속 제공.
1811년 연말 “경찰에서 함께 일하세” “좋습니다” 하여 ‘Brigade de la Surete=Security’ 수사단 만들었다. Surete Nationale 파리경찰청 범죄수사국 전신이다.
단장은 외젠-프랑수아 비도크(Eugene-Francois Vidocq) 바로 그 전과자 출신 경찰정보원이다.
1832년 57세에 퇴직. 1833년 사립탐정 사무실 개업했다. 직원들은? 역시 전과자들로 채웠다! 장수하다 82세에 죽었다.
상상 속 탐정, 뒤펭-홈즈-포와르
탐정의 진면모는 현실세계보다는 추리소설에서 더 빛난다. 픽션fiction은 자유자재로 상상 가능. 사복형사 활약상 즉 논픽션nonfiction은 비밀로 가려지기 십상인 탓이다.
1841년 최초의 탐정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속 범죄해결사 오귀스트 뒤펭은 Detective라는 단어가 없어 Aanalyst라 했다. 애드거 앨런 포 작품이다.
1887년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나왔다. 1842년 런던경찰청은 Detective Branch 설치했다. 그럼에도 홈즈 직함은 private detective가 아니었다. 수사고문이었다.
1920년 전직 벨기에 경찰 에르퀼 포와르는 스타일스 저택의 괴상한 사건에 얼굴 내밀었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이다.
1926년 12월 3일 크리스티 실종, 11일 지나 발견됐다. 남편이 바람피운 상대 여성 이름으로 여관에 투숙했다. 나머지는 다 망각, 남편도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 편이냐면 돈의 편이다
탐정은 돈벌이 신통치 않았다. 요즘도 영화에서는 궁한 김에 불법행위 했다가 당하기만 하는 경우가 자주 나온다.
1857년 불륜 등을 입증하는 자료가 있으면 이혼 허용하는 법(The Matrimonial Act, 결혼법)이 영국에서 나왔다.
증거는 누가 수집하나? 탐정이 한다.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나? 돈 깨나 있는 부자들이 새 여자 만든다. 조강지처 버리려고 의뢰한다. 뒤캐기 영업 정착됐다.
1850년 핑커톤 전미 탐정사무소(Pinkerton National Detective Agency). 앨런 핑커톤이 개업했다. 경비업 발전의 기초 닦았다.
당시 경찰력이나 전문 수사체제가 미약했다. 경호도 하고, 경비도 하고, 범인도 잡았다. 그런데 그만 1890년대 이후 1920년대까지 노조파괴와 파업진압에 앞장섰다. 이후 사세 기울었다.
공직사회에서도
훔친사람이 그 방법을 알기에
감사관하면서 잡아냅니다.
귀한 글 잘 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