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프랑스의 민낯’ 드레퓌스 사건···”나는 국가를 고발한다”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역사는 당신이 대통령일 때 그런 사회적 범죄가 저질러졌다고 기록한다”
1898년 1월 13일 문학신문 <여명>(黎明, L’AUROR 로로르)이 1면에 에밀 졸라의 대통령 앞 공개서한을 게재했다.
타이틀은 나는 고발한다!(J’Accuse …!) D사건의 조작에 관여한 국방장관, 참모총장, 차장, 군 정보부장, 정보부 장교들, D라는 글씨가 D의 필체라고 허위증언 한 필적감정전문가를 고발했다.
중상모략 혐의로 군이 체포하리라 예측하고 쓴 글이었다. 물론 징역 1년, 영국으로 피했다.
군부는 완강했다
1898년 에스테라지 소령 빠져나가게 증거에 손 댄 앙리 중령-그 사이 참모본부 고위층이 어여삐 여겨 승진시켰다-이 증거조작 혐의로 수감 중 회유당했다.
“자네가 다 책임지게. 대신 부인에게 연금 주겠네” 하며 건네는 면도칼로 자살했다. 죽은 자가 어떻게 증언하랴. 에스테라지 소령 외국으로 내뺐다.(악한 자가 그렇듯 천수 다 누렸다 한다.)
1899년 고등법원 심리가 시작됐다. 6월 3일 마지못해 D의 형기 무기징역에서 10년형으로 감형.
1904년 정권이 우파에서 좌파집권으로 바뀌었다. 1906년 최고법원 재심. 7월 12일 무죄 선고. 죄 없는 사람이 죄 없음 되는 데 12년 걸렸다.
유대인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사건 전말이다. 복직 후 소령으로 진급, 제1차 세계대전 참전해 중령 제대했다. 1935년 고생이 병 만들었나 병사했다. 75세.
어디 한 둘이랴
1431년 프랑스를 영국침략에서 구한 잔 다르크. 귀족들은 “네 역할 끝났다”며 마녀이자 이단異端이라며 영국군에 넘겼다. 프랑스 왕은 몸값 거절하고 화형에 처혔다.
1907년 간첩으로 총살형 당한 마타하리. 함정에 빠트려 죽였다.
1974년 아일랜드인 게리 콘론과 3명의 남성이 술집폭파 테러범으로 잡혔다. 영국경찰이 사건 직후 표적으로 설정->증거 조작->범인으로 창조했다. 1989년 석방, 15년이나 투옥한 뒤였다.
1984년 데릴 헌트.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데보라 사이크스 살인범으로 몰렸다. 20년 복역 후 무죄로 석방.
1999년 수녀 노라 월, 아일랜드에서 강간으로 유죄. 무기징역. 4일 투옥 후 운 좋게 진범 나타나 풀려났다.
중세엔 정적-종교적 이유로 죄인 만들었다. 근대 이후는? 경찰의 빗나간 행위가 원죄의 주범이다. DNA 감정으로 구사일생 살아나는 죄수 많다.
분위기 재판
1917년 러시아 혁명. 볼셰비키들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선정보도 횡행했다. KKK도 신났다. 애국단체 자극받았다. 반미사상이라며 공격했다.
법무장관 미첼 파머가 파괴분자 일제검거령 내렸다. 증거도 없이 또는 하찮은 정보로 수천명 체포, 투옥했다.
1920년 4월 15일 보스턴 교외 구두제조회사에서 살인강도 발생. 1만6천 달러 강탈하고 경비직원과 경리담당 죽였다. 여론은 과격분자 소행으로 흘러갔다. 사법은 박자 맞췄다.
5월 5일 29세 제화공 니콜라 사코와 32세 생선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가 체포됐다. 증거 없었다. 판사조차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그 무정부주의자 개자식들! 범인이지 뭐!” 라는 식이었다.
“우리가 범인”이라고 자백한 갱도 나타났다. 무시했다. 대법원도 같은 부류. 하급법원판사 지지하며 재심 기각. 주지사도 “재판에 하자 없다”며 사면권 행사 거절. 한통속 되어 잘못 고치려 하지 않았다.
1927년 전기의자에 앉았다. 1977년 무죄 확인. 50년만이었다. 죄 만든 죄인들도, 죄 없는 사람들도 가고 없는 마당이라 억울함만 남아 운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며
정의감에 불탄 젊음이 부럽습니다.
이런 사람이 많을수록
이 사회는 발전하는것입니다.
귀한자료 잘 접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