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유럽, 경찰과 사회사①] 저항과 단속 그리고 방화

프로이센에서의 절도와 저항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좌측은 단속관련 법 입법 전으로 절도와 저항이 같이 증가. 우측은 입법 후에는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보여준다.

위신 걸고 잡아들여라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단속에 대한 항거 가운데 산림도벌이 특히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썩어서 떨어진 나뭇가지 단 한 개 집어가도 도벌이라 했으니.

1851년 프로이센 형법을 고쳐 저항사범단속규정 신설했다. 관청의 책임자들은 체면 살려야 한다며 “체포! 체포!” 호령했다.

개정 전인 1836년부터 1850년까지 절도 증가가 단속에 대한 반항 증가로 나타났다. 곤궁한 처지에서의 절도권 행사와 사회적 저항권이 같은 궤를 그렸다.

개정 후인 1852년부터 1866년까지 절도와 반항 모두 오히려 급감하면서 절도 최대건수가 반항 최하건수에 대응한다. 왜 그럴까? 1851년 저항사범 단속규정 생겼기 때문이다.

공업화 과정에서 자본가의 노동착취에 노동자계급이 ‘단결’로 대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개인적 항의와 저항 대신 집단으로 연대해 행동했다. 가령 1865년 철도노동자의 고용주 고발은 3044건이나 됐다.

19세기 중엽 수공업자 가재도구 차압 장면 삽화


같은 계급끼리 잡고 잡힌다

누가 폭행당하고 모욕당하는가. 민중과 직무상 직접 접촉하는 관리 즉 명령서 전달인, 집행인(집달리), 경찰관, 세무서-세관 직원, 산림도벌-밀렵 감시인, 사법기관의 서기-법정경위 등 하급직원이다.

이들도 역시 하급계층(working class)으로 고위관리, 판검사의 오만불손한 권력에 내몰린다. 못 배운 것들-가진 것 없는 것들에게 비례非禮 저지른다.

기실 공권력 행사에 대한 저항은 관리의 태도가 유발한다. 그들 말대로 못 배웠으니 이성적, 논리적 저항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격정과 분노 형태로 폭발한다. 가진 게 그것 뿐 없으니 말이다.

빈민에게는 단순한 사적행동私的行動이나 또는 가족의 배고픔을 면하려는 반응이다. 당국은 이 행위에 공공성公共性이라는 색을 칠한다. 억압의 구실 만든다.

특히 생계도구 가령 농민은 농기구, 대장장이는 풍로를 차압당한다. 무엇으로 일해 납부 하냐? 저항하라!

법정은 최하층계급 당사자 즉 잡혀온 죄인과 상층계급인 법관이 서로 대치한다.

광대나 다름없는 검사와 변호사 앉혀놓고 “세상물정 좀 살피쇼” 한다. 그 항거에 대한 죄 값으로 한 6개월 감옥에 더 들어가 앉는다.

19세기 중엽 유럽 소방서 진화 출동

불 지르기

방화(arson 放火)는 현대에 이르러 성의 관점에서 해석하기가 유행하고 있다. 성적욕구 대리충족이라고? 배부른 학자들 얘기다.

산업혁명 와중에 부=소유 대 무소유=빈곤과의 대립에서 방화가 초래됐다. 사회적-정치적 저항의 산물이기 때문에 배고픔 면하려는 절도처럼 대량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침해대상이 사유재산이 아니고 공공이익이라고 규정했다. 사형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1836년부터 1865년 사이 매년 400~600건 발생했다. 입증 어려워 기소 쉽지 않다. 고의로 불 지르기가 실제로는 훨씬 더 많았다.

19세기 중엽 유럽 소방대 진화 장면


역시 항거抗拒

방화 원인은 보험금 욕심이 가장 많고, 이어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복, 사랑이나 실연, 불내고 구경하는 방화벽放火癖의 성적욕구 충족의 순順으로 많다.

작센 출신 점원 25세 호프마이스타는 가게주인의 일방통고 받았다. “장사 안 된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 하지만 갈 곳이 없다. 에라! 불이나 지르자. 보복방화 잦았다.

1812년 최초의 보험회사 베를린화재보험주식회사 출현했다. 영업사원들은 불나면 많은 돈 드린다면서 부유한 농가를 대상으로 고액보험 모집했다.

흉년->농가수확 감소->밀 찧는 제분소 일감 급감->빚 갚기 곤란->보험금 청구의 순으로 이어졌다. 예상 손실의 2배 가까이 든 보험. 영업촉진 차원에서 100% 지급했다.

보험금 잘 준다고 소문나자 가입 급증했다. 이번에는 보험회사 사람들 배가 불러졌다. 그러자 심사 엄격히 해서 줄 돈도 안줬다. 돈 안 나가니까 돈 쌓였다. 보험 든 사람들은 길바닥으로 나앉았다. 홈리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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