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 박노해

꽃은
단 한 번 핀다는데
꽃시절이 험해서
채 피지 못한 꽃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한 생에 두 번 꽃이 핀다네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

꽃시절 다 바치고 다시 한 번
앙상히 말라가는 온몸으로
남은 생을 다 바쳐 피워가는 꽃
패배를 패배시킨 투혼의 꽃
슬프도록 아름다운 흰 목화여

이 목숨의 꽃 바쳐
세상이 따뜻하다면
그대 마음도 하얀 솜꽃처럼
깨끗하고 포근하다면
나 기꺼이 밭둑에 쓰러지겠네
앙상한 뼈대로 메말라가며
순결한 솜꽃 피워 바치겠네

춥고 가난한 날의
그대 따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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