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카슈미르의 저녁’ 박노해
분쟁의 땅 카슈미르에서 오늘도
총칼의 공기가 무겁게 감싸던 하루가 저문다
엄마는 저녁 준비를 위해 불을 지피고
어린 딸은 식탁에 차릴 그릇을 꺼낸다
창밖에는 히말라야의 눈보라가 날려도
장작불은 타오르고, 그래도 우리 함께 있으니
이 작은 집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불의 사랑으로 봄을 기다릴지니
인간은, 세계 전체가 짓누르고 죽이려 해도
속마음을 나누고 이해하고 믿어주고 안아주는
단 한 평의 장소, 단 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랑이면 살아지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