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77] “공무원 가장 큰 백은 ‘일’, 자신감 있게 ‘일’로 승부를”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2019년 8월 31일, 총장 취임 14년을 맞이하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서 『중앙일보』 양영유 교육 전문기자와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학생 수 급감으로 대학들이 벼랑 끝에 섰다. 당장 올해 고3이 치르는 2020학년도 입시부터 대학입학 가능 학생 수(47만 9,376명)가 대입 정원(49만 7,218명)보다 2만 명 가까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대입 정원이 유지될 경우 심각한 대학 붕괴가 예상된다. 2022학년도에는 8만5,184명, 2024학년도에는 12만 3,748명이 모자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단순히 계산하면 4년 후에는 전국 351개 대학의 4분의 1인 87곳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뽑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이라면 전문대는 ‘핵폭탄’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 근대화·산업화의 동력인 전문 기술인을 양성해 온 전문대는 이 난국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까. 전국 136개 전문대 총장의 협의체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이기우 회장을 만나 고민과 대책을 들어 봤다.
-학령 인구 감소로 대학에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지방 전문대, 수도권 전문대, 4년제 지방대 순으로 치명적입니다. 전문대는 2015년부터 이미 미충원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요. 올해는 입학 정원의 80%, 2020년대 중·후반에는 50%밖에 채울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전문대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알몸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현재 전문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전국 136개 전문대의 신입생 정원은 16만 7,464명입니다. 전문대 제도는 1977년에 도입됐는데 90년대 중반 대학설립준칙주의로 급증했죠. 2002년이 전성기였어요. 전국 158개 대학에 입학 정원이 30만 명에 육박했으니까요. 현재는 22개 전문대가 사라졌고, 정원도 13만 명 줄었습니다. 4년제에 치이고 고졸에 치이다 보니 취업도 어려워지고 있어요.
-전문대에 대한 정부 관심이 적은 것 같습니다. 지방 정부도 마찬가지고요.
“세계적으로 고등직업교육을 우리나라처럼 사립 전문대가 도맡아서 하는 나라는 없어요. 국공립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59%, EU21 국가는 66%인데 우리는 2%에 불과해요.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전문대 붕괴는 전문 기술직 양성과 지역 경제에도 치명적입니다. 중앙·지방 정부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려 합니까?
“전문대를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전문대의 장점은 빠른 수업 연한, 빠른 입직, 전문 직무 교육, 산학협력, 저렴한 등록금(일반대의 83%)입니다. 지금이 그 패러다임을 바꿀 적기입니다. 「고등교육법」 제1장 2조(학교의 종류)에 명시된 ‘전문대학’을 ‘평생직업교육대학’으로 변경할 것을 제안합니다. 전문대를 일반대의 하위 기관이 아닌 전문 직업인 양성과 평생고등직업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학도에게 문을 열어 줘야 합니다.”
-만학도에게 전문대 입학을 개방하자는 뜻입니까? 방법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고교 졸업 후 20세에 대학생이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30세 이상 고졸 재직자, 직업교육 소외 계층, 산업체 근로자, 경력 단절자, 은퇴자, 전직자 등 누구나 대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전문대의 만학도와 성인 학습자를 보세요. 전문대 신입생 중 26세 이상 학생은 2016년 8.5%, 2017년 9.1%, 2018년 9.5%로 높아졌어요. 반면 일반대는 1%에 불과합니다. 저는 고등직업교육 성인 학습 잠재 대상자를 55만 3,000명 정도로 봅니다. 30세 이상 고졸 경제 활동 인구 921만 명과 성인 학습자 중 전문대 진학 희망 비율(6%)을 기초로 산정한 겁니다. 만학도가 전문대의 돌파구입니다.”
-이 회장님은 정부에 30~70세 성인 만학도는 대입 정원 외 입학을 허용해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전문대 공동화를 막을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입니다.
“평생직업교육 지원 장학금이나 평생교육지원사업에서 현재 일곱 개인 전문대 사업을 80곳(학교당 7억 원)으로 늘리면 됩니다. 정원 외 등록금 지원은 포용 국가 실현의 한 방법이기도 하고요.”
-법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직업교육진흥법’과 ‘고등직업교육 재정교부금법’ 제정이 시급해요. 직업교육에 대한 법적 정의와 발전 계획, 재원 확보 등을 명시하자는 취지입니다. 교육에는 여야, 정권, 이념이 따로 없습니다. 범국가 차원에서 직업교육 희망의 사다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절실합니다.”
-자발적 노력·혁신도 절실합니다.
“4차혁명은 전문대의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합니다. 저는 방향을 ‘뉴 칼라’로 설정했습니다. IBM 최고경영자 버지니아 로멘티의 말처럼 인공지능(AI) 시대에는 수많은 일자리가 블루나 화이트 칼라가 아닌 ‘뉴 칼라’에서 생겨날 겁니다. 전문대도 기존 전공만 고집하지 말고 융·복합을 통해 잘할 수 있는 전공 중심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애완동물 관리나 노인 케어, 한옥 건축 등 블루오션은 많아요. 제발 4년제 대학이 카피를 안 했으면 좋겠어요. 물리치료·뷰티학·조리학까지 따라 하네요.”
-그래도 학생이 계속 급감하고 있으니 부실 대학 구조조정은 필요합니다.
“당연합니다. 2024년에 고3 수가 40만명 밑으로 떨어진들 대학이 반으로 줄까요? 한 명이라도 붙들고 끝까지 가려는 대학이 속출할 겁니다. 퇴로를 열어 줘야지요. 지자체 산하 지방 공기업이 폐쇄 대학 땅과 시설을 인수해 개발할 것을 제안합니다. 재개발 수익금 일부를 설립자에게 주면 정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구조조정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왜 안 하고 못 하는지…….”
-인천재능대 혁신 경험을 전국 전문대와 나누면 좋겠네요.
“물론입니다. 저는 펭귄의 지혜를 강조합니다. 남극에 사는 펭귄은 시속 100㎞의 눈보라와 영하 50도의 혹한에도 살아남아요. 비법은 허들링(huddling)입니다. 서로 몸을 밀착시켜 체온을 나누며 추위를 이겨 냅니다. 거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맨 바깥쪽에서 강풍을 막던 펭귄의 체온이 떨어질 때쯤 안쪽 펭귄이 자리를 바꿔 주는 겁니다. 우리도 ‘지혜 허들링’이 절실합니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을 어떻게 봅니까?
“지난달 일반대와 전문대 총장들이 사상 처음으로 모였어요. 등록금 동결, 입학금 폐지, 강사법 시행, 주 52시간제, 학교 소유 부동산 재산세 부과 등으로 대학이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이죠. 교육부가 현장의 아픔과 애로를 씻어 주려는 의지가 부족해요. 현장 중심의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 필요해요.”
-교육 공무원들은 영혼이 없다고 합니다.
“일이 참 많고 고된 부처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잃어선 안 돼요. 공무원의 가장 큰 백은 ‘일’이니 자신감 있게 일로 승부하세요. 학생만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