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78] ‘거제의 봄’과 정호승 시 ‘봄길’을 좋아하는 까닭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나는 고향을 자주 찾으면서 고향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고향은 나에게 늘 어머니 품처럼 평온하기 때문이다. 내 고향 거제에서 교육청 공무원을 마치고 고향을 떠났지만 어디를 가든 고향은 늘 마음속에 함께 다녔다. 봄이 아니어도 고향은 항상 봄을 생각나게 하는 마력이 있다. 대학 총장을 하면서 학생들을 교육하다 보니 늘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소망이 있다.
내가 정호승 시인의 시 「봄길」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거제는 나라를 세 번이나 구했어요.” 거제 사람들이 가지는 자부심이다. 세 번은 언제일까. 첫째는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었던 옥포해전이고, 둘째는 15만 피란민이 전쟁을 견뎌냈던 6.25 전쟁 당시이며, 셋째는 IMF 시절 거제 조선업이 우리 경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했던 때이다.
나 역시 거제 출신으로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업의 호황으로 거제는 잘사는 지자체로 소문이 나 있었다. 지역 소득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부자 마을이었다. 하지만 지금 고향에 가 보면 예전의 영화는 점점 보이지 않는다. 조선업의 불황으로 실업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문을 닫는 가게는 늘어나고,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지역 경제가 붕괴되고 있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여건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제인들의 핏속에는 위기를 극복하는 DNA가 흐르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었습니다. 최고의 조선 기술로 선박 수주량 세계 1위를 석권했던 민족이고 주민입니다.” 내가 강조하는 말이다.
나는 거제의 지역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희망을 노래했다.
아직도 거제에는 조선업과 관계되는 우수한 기반 시설과 기술자가 건재합니다. 조선업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재고용이 이루어지면 옛 영화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옛 영화를 기억하는 시민 모두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부활의 합창을 힘껏 부르면서 대한민국을 세 번 구한 거제의 저력을 믿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거제의 봄은 곧 오고, 꽃도 곧 필 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관광 산업에 대한 꿈도 함께 강조했다.
제 고향 거제는 우리나라 제2의 섬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금강과 구조라해수욕장 등 풍광이 장관을 이루고, 연중 기후도 온화해 사람이 살기 더없이 좋아 휴양지와 같은 곳입니다. 관광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지요. 저는 조선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역 경제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관광업이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 불황에 따른 조선업 침체가 되풀이되어도 제 고향 거제가 다시는 지난 몇 년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조선업과 관광업 쌍두마차로 더욱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봄길이 되어 주고 싶다.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봄길이 되고 싶다. 올봄에 고향을 찾으면서 나는 『한국경제신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을 이렇게 적어 보았다.
고향. 말만 들어도 아련한 향수가 묻어나는 곳이다. 우수(雨水)가 겹친 정월 대보름날, 그리운 고향을 만났다. 거제에 봄은 왔건만, 양광(陽光)은 먼 듯 바람이 찼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타향에서 오래 살아 봐야 실감이 난다. 사실 애타게 가고 싶어도 막상 가기 힘든 곳이 고향이다. 얼었던 대동강도 풀린다는 우수가 겹친 정월 대보름에 고향 방문은 감회가 새롭다. 경남 거제시 상문동에서 주최하는 ‘대보름 달집 태우기’ 행사에 초청됐다. 마침 부산에 행사가 있어 일정을 마치고 거제로 향했다. 차창 너머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속절없이 멀어지는 부산 신항만의 위용이 놀라웠다.
상념에 젖는 사이, 차는 어느새 가덕도를 횡단하고 있다. 남해 바다는 푸르다 못해 시리다. 바다를 압도하는 거가대교가 반겼다. 재경향인회 회장 자격으로 대교 준공식에 참석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바다 밑에 놓인 침매(沈埋)터널을 지난다니 감개무량하다. 바다 밑을 달린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저도가 눈 아래 아름답게 전개된다.
바다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이다. 파도 속에 청운의 꿈을 키우던 때가 있었다. 추억은 어느새 진한 그리움으로 변하고 고향을 앞두고 마음이 더욱 설렜다.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찬 초봄이 아닌가. 화향에 취한 채 꽃길을 달리다 보니 동백꽃과 매화가 자태를 자랑한다. 삼동(三冬)을 이기고 피어난 동백꽃과 매화는 어떻게 추위를 이겨 냈을까. 계절의 전령사가 이렇게 빠르니 거제는 축복받은 땅임에 틀림없다.
6.25 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조선 경기 호황으로 상전벽해를 이룬 상문동은 달집을 태우는 현장이다. 생솔가지 화목(火木)에 불이 붙어 힘차게 타오른다. 나는 액운과 소원을 적은 소원지를 접어서 활활 타는 달집 속에 던졌다.
“액운이여 날아가고 소원이여 오라!”
체증이 사라지듯 가슴속이 후련했다. 보낼 것은 보내고 알릴 것은 알린 홀가분함이다. 나는 기원했다.
“따뜻한 기운이 고향을 감싸게 하소서. 다시 이곳에 올 때는 따뜻한 봄날이기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고향에 봄은 왔는데 아직 춥다. 조선업 불황으로 경기가 바닥을 헤매고 있다. 봄은 왔건만 아직 추운 고향에 춘풍이 불기를 학수고대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런가. 무의식 속에 잠재된 귀소본능이 꿈틀거린다. 대륙의 기가 모여 상승하는 포구에 닻을 내리는 꿈이다. 불야성을 이룬 항구가 보인다. 고향에 봄이 빨리 찾아와 주름살 펴진 얼굴에 웃음꽃이 필 날을 소망한다. 그렇다. 나는 고향을 사랑한다.
고향에 ‘진정한 봄’이 오는 꿈을 꾸며 귀향을 생각한다.
이름을 바꾸지 않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