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79] 이름 바꾸지 않길 잘했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1983년 가을 어느 날,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교육부 서무계장 재직 시 동료 직원들과 점심을 먹고 청사로 들어오는 길에 그 당시에 꽤나 이름이 알려져 있던 김봉수 철학관이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그날따라 철학관 간판이 눈에 크게 들어온 것이다. 마침 점심시간이 남아서 호기심에 철학관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보았다. 나는 경남교육청에서 서울에 있는 교육부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삶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해서 찾아가 본 것이다.
그 유명하다고 하는 분이 “사주는 좋은데 이기우 이름이 안 좋으니 이름을 바꾸세요. 그러면 인생이 펴져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름을 바꾸라는 말에 마음은 조금 무거웠지만 그렇다고 이름을 바꾸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 그냥 흘려보냈다.
나는 서울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공무원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며 공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고졸 출신이지만 일하고 승진하는 데 학력이 방해 요인이 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승진하여 교육부의 꽃이라고 불리는 기획관리실장 자리에서만 3년 6개월 동안 일곱 분의 장관을 모시고 장기 근무를 했으니 이 또한 진기록이다.
2002년 12월 하순, 이상주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 본부 실국장의 부부 동반 송년 모임을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18층 식당에서 가졌다. 이 장관은 실국장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면서 소개하다가 나에 대해서는 길게 소개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리더십 전문가인 정헌석 박사가 『꿈, 비전 그리고 목표』라는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서 그대로 옮겨 본다.
그와 찰떡궁합이라는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은 “이 실장(당시 기획관리실장)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우수한 공무원이다.”라고 극찬했다. 뒤를 이은 이상주 전 교육부 장관은 “이해찬 전 장관은 무슨 말을 그리 하나? 100년에 한 명이라니 그거 잘못된 소리 아닌가?”라고 하니까 배석한 간부들이 모두 무슨 말실수라도 저지른 양 등줄기가 서늘했단다. 이윽고 “내가 볼 때 이 실장은 100년이 아니라 1,000년에 한 명 나타날까 말까 한 아주 탁월한 공무원이야.”라고 말하니 그제야 모두 허리를 곧게 펴고 파안대소했다고 한다. 이 정도로 그는 모든 이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2월 24일, 이상주 장관이 장관직에서 이임하는 날 송별 기념사진을 찍고 티타임을 가졌을 때 장관께서 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나는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강원대·울산대·한
림대 총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원장,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지내고 교육부 장관으로 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곳에서 일을 했지만 교육부에 와서 일을 가장 많이 배웠어요. 내가 외부 사람을 만나러 갈 때나 만나고 와서 이 실장에게 전부 이야기를 하면 그때마다 기가 막힌 제언을 해 주었지요. 정말 많이 배웠고 장관을 물러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처럼 과분한 평가를 받으며 나는 이름을 바꾸지 않은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기우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분이 많다. 인터넷에 이기우를 검색하면 나는 항상 영화배우이며 탤런트인 이기우 씨에게 밀린다. 그에 대한 기사는 매일 나오다시피 한다. 젊고 미남인 유명 배우가 나와 이름이 같으니 참 기분이 좋다. 제17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현재 문희상 국회의장 비서실장으로 있는 이기우 비서실장,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지낸 이기우 전 산자부 공무원,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연구 분야의 1인자인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이기우 교수 등 참 능력 있고 좋은 분들이 있다. 책이 나오면 나와 이름이 같은 분들을 다 같이 초청하려고 한다. 70억 인구에서 같은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인연인가.
나는 이름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포중학교 행정실 책임자로 있을 때 몸이 아파서 출근하지 못한 선생님의 반을 며칠 동안 도와준 일이 있었다. 나는 이때 그 반 학생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고 지도를 하여 모든 학생과 친하게 지냈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름은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
나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좋아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는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공직을 이동할 때마다 이름을 외우는 일을 가장 먼저 한다. 교육부 총무과장 시절에도 수백 명의 직원들 이름을 다 외우고 소통했다. 교육부 본부 복도를 지날 때 “김?? 사무관!” 하고 이름을 부르면서 근황을 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그 직원은 인사 실무 책임자인 총무과장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며 관심을 보이니 깜짝 놀라 당황해하면서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다.
인천재능대학교에 와서도 교직원들을 만나기 전에 교수와 직원의 이름을 모두 외워 직접 이름을 부르면서 만났다. 교직원들이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어느 직장이든 기관장이나 간부가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는 것이 직원 사기 진작에는 가장 기본이 되는 듯하다.
수십 년 전 옛날을 되돌아보면서 이름을 바꾸지 않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