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의 행복한 도전 80] ‘사람’과 ‘교육’이 희망이다
[아시아엔=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 회장, 이해찬 국무총리 비서실장 역임] 내가 나에 대한 책을 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내온 내 삶을 한 번쯤 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기억이라는 것에는 시효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의 무질서함에 질서를 부여하는 데 글은 가장 효과적인 매개라고 늘 생각해 왔다.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몰랐던 옛날 앨범에서 빛바랜 사진을 꺼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치기와 오기로 날이 바짝 서 있었던 소년·청년기의 그 어설픈 몸짓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고, 의욕 과잉으로 날이 새는지도 몰랐던 교육부 시절의 그 열정에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기억보다는 ‘그나마 잘했다’는 생각이 먼저다. 후회 남기는 일을 하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결벽증에 가깝도록 엄격했던 것을 감안하면, 나에게 칭찬 한번쯤 허락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 아주 많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나보다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더 크게 보였다. 나는 부자 소리 한 번 들어 본 적 없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지위는 물론 사람들이 두려워할 권력을 가져 보지 못했다.
재력과 지위와 권력을 기준으로 내 삶을 평가하면 나는 보통, 아니 낙제 인생이다. 그러나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나는 정말 부자다. 나에게는 사람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마운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세계적인 부호 반열에 오를 것이다. 빌 게이츠가 부럽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내 삶을 끌어왔던 동력이 나 스스로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큰 착각이었다. 이 글을 계기로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의 기반은 내가 아니었다. 내 삶의 원동력은 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아주 고마운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서로 자기네 집 제삿날을 알려 주면서 주린 배를 채웠던 유년 시절 배꼽 친구들, 아무런 기대 없던 소년 시절에 희망을 주었던 선생님들, 거제교육청에서 9급 공무원 시절 나를 혼냈던 상사, 교육을 위해 뒷골목을 배회하며 고민과 번민을 같이 해 준 교육부 선후배와 동료들, 기업 경영에 눈을 뜨게 해 준 한국교직원공제회 임직원들, 국정 전반에 걸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국무총리와 총리실 직원들, 오직 총장만 믿고 혁신의 길을 함께해 준 인천재능대학교 구성원들, 고등직업교육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함께 분투해 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가족들, 국가교육회의 의장과 위원들,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거제의 참맛을 공수부대처럼 날라다 주던 거제 사람들과 향인회분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인연 따라 만난 사람들, 이들이 바로 오늘의 나를 이끌어 준 기반이었다. 내가 마음 편히 의지하고 비빌 수 있는 큰 언덕이었다.
그래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글을 별도로 쓰려고 했다. 어느 날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나에게 별처럼 들어왔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생각하면서 정리를 해 나갔다. 한 분 한 분 이름을 적으면서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했다. 사실 몇 개월이 걸렸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한참을 적어 가다가 펜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정말 많은 분의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왔음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휴대폰에 저장된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러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제부터는 고마운 분들에게 내가 보답해야 할 차례다. 그 시작점은 내 태를 묻은 고향 거제다. 거제는 내 삶의 원형적 공간이다. 고향에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 나는 늘 거제와 함께했다. 그런데 최근 그 공간이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으로 훼손되고 있다. 이것은 내 기억은 물론 내 고마운 친구와 선후배와 어른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고향 거제’를 지키고 싶다. 그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길인 까닭이다.
또 하나는 내 분신이며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을 지키는 일이다. 나는 교육부 공무원으로 38년을 봉직했다. 교육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대학 총장으로 14년을 지냈다.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을 네 번 연임하면서 8년이나 했다.
국무총리 교육개혁협의회 위원으로 1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원으로 3년을 활동하며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조율해 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중요한 교육정책은 내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의 A부터 Z까지 전 영역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 현장은 입시 지옥의 굴레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교육 현장은 항상 혁신되고 또 혁신되어야 한다. ‘교육이 희망이다’를 실천하는 일에 마지막까지 함께하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지키고 교육 현장을 지키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여기까지 오도록 도와준 모든 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나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평가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기우 주변에는 늘 사람이 있더라.”
교육이 희망이다.
사람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