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대로 알기] 말에서 남녀 성별이 드러난다?

일한사전

[아시아엔=심형철, 이선우, 장은지, 김미정, 한윤경 교사] “오늘 진짜 춥다. 빨리 가자.” 이 말은 여자가 했을까? 남자가 했을까? 이 문장만 보고서는 절대로 말한 이의 성별을 구분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일본어라면 어떨까?

“今日すっげ寒いな。早く行こうぜ。” 이렇게 말했다면 이 사람은 100% 남자일 거고, “今日本当に寒いわね。早く行こうよ。” 이렇게 말했다면 이 사람은 100% 여자일 거다.

어떻게 구분할까? 일본어는 남자와 여자가 주로 쓰는 말이 따로 있어 말투나 단어 등만 봐도 구별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냐?’는 대개 남자가, ‘~하니?’는 여자가 쓰는 말투다. 하지만 일본어처럼 확실히 남녀를 구분할 순 없다.

모든 언어는 처음 배울 때 나, 너, 그, 그녀 등 인칭에 관련된 표현을 먼저 배운다. 일본어는 인칭 표현부터 남녀가 구분되어 있다. 우리말 ‘나’에 해당하는 일본어로 와타시(わたし), 와타쿠시(わたくし), 아타시(あたし), 보쿠(ぼく), 오레 (おれ) 등 여러 표현이 있다. 이 중에서 ‘아타시’는 여자만 쓰는 표현이고, ‘보쿠’와 ‘오레’는 남자만 쓴다.

정식적인 자리에서는 주로 와타시나 와타쿠시가 쓰이지만 일상회화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보쿠나 오레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럼 2인칭은 어떨까? 한국에서 유행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일본어 제목은 ‘기미노 나와(君の名は)’다. 한국어 제목에서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지만, 일본어 제목은 이 말이 남자가 한 말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너’라는 말도 여러 개가 있다. 기미(きみ)라는 말은 주로 남자가 쓰고, 아나타(あなた)라는 말은 주로 여자가 쓴다. 이외에도 오마에(おまえ)라는 단어는 아주 친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면 하대하는 느낌도 있고 조금 난폭한 느낌도 있어서 남자는 여자에게 이 단어를 쓰지만 여자가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종류의 단어들을 일본에서는 남성어, 여성어라고 부른다.

남성어는 강하고 거친 느낌을 주는 단어들이 많은 반면(예를 들면 거친 감탄사나 욕설), 여성어는 부드럽고 존중하는 느낌의 말이 많다. 말투 때문인지 여성이 남성에게 말할 때 훨씬 예의 바르고 친절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례로 일본에서는 아직도 다른 사람 앞에서 부인이 자신의 남편을 주인(主人)이라고 부르거나 남편이 자신의 부인을 지칭할 때 요메(嫁)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요메라는 뜻은 ‘집에 시집 온 사람’라는 의미로 시부모가 며느리를 지칭하는 말인데, 남편이 이 단어를 쓴다면 하대하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최근 일본에서는 이런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고 다른 단어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이런 여성어, 남성어는 남존여비 사상의 결과물인 걸까? 몇몇 단어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런 느낌이 남아 있는 채로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여성에게 하대하는 말투를 쓰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하고, 여성은 존댓말을 쓰지만 남성은 반말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조사에 의하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말한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남성 여성의 차이라기보다는 직업, 나이, 출신지역 등 다양한 차이에 따라 말하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라고 한다. 또 여성은 남성에 비해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상황에 대한 인식이 민감하다. 여성이 상황과 장소에 맞게 정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본인의 품격을 높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어는 인사치레라든지 존경과 겸양의 표현이 매우 발달한 언어다. 그런 말을 하나하나 예의에 맞게 구사하려면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 터다. 또 일본 여성들의 경우 비음을 많이 쓰는 고음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 여자들의 말은 더 예의 바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요즘은 사실 남성어와 여성어의 구분이 거의 없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고, 실제로 몇몇 단어들을 제외하면 남성의 말과 여성의 말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차이를 보이는 곳이 한군데 있는데 바로 문장의 맨 마지막 부분이다.

우리 말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장 성분인데 바로 ‘종조사’다. 문장의 맨 마지막에 붙여 어감에 약간의 차이를 줄 수 있는 글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요(よ)’나 ‘네(ね)’ 같은 글자들이 있다. 이 글자들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보다 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수십 가지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남자들만 쓰는 종조사와, 여자들만 쓰는 종조사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제(ぜ)’, ‘조(ぞ)’ 같은 종조사는 발음에서도 알 수 있듯 세고 거친 남성적 느낌이 난다면 ‘와(わ)’ 같은 종조사는 부드러운 여성미가 느껴진다. 앞에서 예시로 들었던 문장은 바로 이 종조사를 통해 성별을 구분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노요(のよ)’라는 것도 있는데 이 말은 연약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강한 종조사다. 남자들은 웬만해선 쓰지 않는다. 일본어는 번역을 할 때 화자의 성별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만약에 “무서웠어”라는 말을 일본어로 번역할 때 일반적으로 번역한다면 “코와깟딴다요(こわかったんだよ)”라고 하지만 여성이 말하듯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고 싶다면 “코와깟따노요(こわかったのよ)”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일본어는 이렇게 종조사만으로도 말하는 사람의 성별을 구별할 수 있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 실력이 늘면 늘수록 어려움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단어는 외우면 되고, 문법도 공부하면 되는데 바로 이러 한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어떻게 표현해낼 수 있는가는 실 제로 일본인이 쓰는 표현을 많이 듣고 따라하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어 선생님이 여자인 경우가 더 많아서 남 자들은 남성의 말투를 제대로 공부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매우 좋아하는 남학생이 영상을 통해서 일본어를 공부한 후 일본어를 정식으로 배우려고 학원에 갔다. 그런데 학원의 일본인 선생님이 이 학생이 하는 말을 듣고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 학생이 일본어를 잘 하는 건 맞는데 여고생 말투였기 때문이다. 이 남학생이 열심히 보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죄다 여고생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 여학생 말투가 배어 버린 거다.

평상시에 쓰는 일본어는 여성어와 남성어의 차이가 심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 특히 만화에서는 대개 캐릭터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단적인 여성어와 남성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영상으로 일본어를 공부할 때는 조금 선별해서 공부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일본어는 여성어, 남성어 이외에도 야쿠자의 언어, 고등학생의 언어, 노인의 언어, 직장인의 언어 등 사회에 소속된 각각의 사람들이 쓰는 말투와 단어가 매우 일찍부터 발달해 왔다. 어떤 사회든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인 그룹은 그들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말투를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일본어가 가진 이런 특징들을 잘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출처=지금은 일본을 읽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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