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살③] 한자의 기원···갑골문자·동파문자·서하문자
[아시아엔=중국을 읽어주는 중국어교사 모임] 한자의 기원은 기원전 11~14세기 상(商)나라 갑골문(甲骨文)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갑골문은 주로 거북이 배 껍질에 칼로 금을 긋고 불에 달궈 갈라진 모양 옆에 글자를 새긴 것이다. 거북이 말고도 소의 어깨뼈에 새기기도 했다.
옛날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거북이 껍질이나 딱딱한 뼈에 금을 긋고 불을 피우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문자를 남긴 걸까? 동물 뼈에 새긴 글은 점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즉, 금을 긋고 불을 피우는 것은 점을 치는 행위였다지. 예를 들면 사냥을 나가기 전에 신에게 “내일 비가 올까요, 안 올까요?” 물은 다음 “안 온다.” 이렇게 그 결과도 적었다.
다시 말해 갑골문은 점을 쳐서 나오는 점괘를 써둔 것이다. 또 사냥 나가기 전에 “소를 잡을까요, 못 잡을까요?”와 같이 점을 쳐 보기도 했다.
갑골문을 ‘점을 치는 문자’라는 뜻의 ‘복사(卜辭)’ 혹은 ‘점복(占卜)’ 문자라고도 한다. 그리고 은허(殷墟), 즉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 지방의 유적지에서 주로 쓰인 문자라서 ‘은허문자’라고도 부른다.
갑골문에 쓰인 내용을 통해 기원전 11~14세기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갑골문자는 4500자 정도. 상형, 지사, 회의, 형성 등 한자의 원리가 갑골문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명실상부한 한자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한자와 모습이 비슷한 ‘물 수(水)’, ‘비 우(雨)’ 등의 갑골문이 거북이 등껍질에 새겨져 있다.
창힐(倉?)이라는 사람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는 눈이 네 개 달린 전설 속의 인물이다. 지금으로부터 5천~6천 년 전에 역사기록을 담당했던 창힐이란 사람이 짐승이나 새의 발자국 모양을 본떠 한자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중국인들이 한자를 신화처럼 숭상하려는 데서 비롯된 이야기로 보인다. 또는 갑골문보다 더 이전에 한자가 쓰였다고 주장하고 싶은 바람으로 전해지는 설화일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도 상형문자를 쓰고 있는 민족이 있을까? 중국 윈난(雲南)성에 있는 소수민족인 나시(納西)족은 아직까지 1천년 넘게 고유의 상형문자를 간직하고 있다. 바로 동파문자(東巴文字)로, 세계 유일의 현존하는 상형문자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동파문자는 나시족이 종교의식을 행할 때 쓰는 문자인데, 지금도 나시족은 이 동파문자를 계승해 오고 있다.
한자처럼 보이는데 서하문자?
11~13세기 중국의 오르도스·간쑤(甘肅) 지방에는 서하(西夏, 1038~1227)가 있었다. 지금도 이 나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400년 동안 그들만의 글자를 만들어 보급하고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고유 문화를 지키려는 의지가 강한 민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서하국을 세운 경종(景宗) 이원호(李元昊)가 창제했다는 서하문자는 얼핏 보면 한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모양이 다르다. 서하문자는 한자에서 뜻과 뜻을 모아 만드는 ‘회의’라는 방식과, 뜻과 소리 부분 글자를 합해 만드는 ‘형성’이라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갑골문의 발견으로 실제 있었던 나라인지 아닌지 논란만 가득했던 상(商)나라가 비로소 중국의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시족은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의 상형문자를 지켜오고 있다. 그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시족의 고유 문화를 엿보기 위해 나시족이 사는 마을을 직접 방문한다. 그리고 서하가 있었던 곳에 가면 기념으로 서하문자가 쓰인 수건이나 액자를 사기도 한다.
특이성과 함께 독자적인 문자체계를 가진 서하문자는 우리에게 신비로운 서하국의 모습을 조금씩 알려주고 있다. 문자는 기록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의 산물이고, 문자가 있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