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 18] 옥황상제의 대사 ‘조왕신’
[아시아엔=심형철·박계환·홍경희·조윤희·응우옌 티타인떰·응우옌 타인후옌 교사] 베트남에서 음력 12월 23일은 조왕신(?王神)을 모시는 날이다. ‘조(?)’는 부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조왕은 부엌신 또는 부뚜막신을 뜻한다.
베트남의 모든 가정은 이날을 중요하게 여겨서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고 22일 밤부터 23일 자정 사이에 제사를 올립니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 조왕신이 하늘로 올라가므로, 음력 23일은 조왕승천일이라고도 부른다.
조왕신에 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전설1
옛날 옛적에 아주 가난한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멀리 길을 떠났다. 아내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여러 해를 기다렸으나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상을 치른 후 항상
자신을 도와주던 은인과 다시 결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남편이 일하러 나간 사이에 놀랍게도 전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너무나 놀라고 반가웠지만 재혼한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때 후남편이 돌아왔고, 그가 자신의 정조를 오해할까 두려웠던 아내는 전남편을 볏짚더미 속에 숨겼다. 그날 밤, 아무것도 모르는 후남편은 마침 논에 쓸 재가 필요해서 볏짚더미를 불에 태웠다. 안타깝게도 볏짚 속에 숨어 있던 전남편은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전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본 아내는 자신을 원망하며 불에 뛰어들어 따라 죽었다. 후남편은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가 불길에 뛰어드는 것을 보자 무슨 이유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절망에 빠져 자신도 아내 뒤를 따라 죽었다.
전설2
옛날 옛적에 결혼한 지 오래되었지만 자식이 없는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큰 말다툼 끝에 남편이 부인을 때렸다. 그러자 부인은 집을 나가 새 남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한편, 전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부인을 찾아 전국을 떠돌았다. 갖은 고생으로 거지꼴이 된 남편은 먹을 것을 구걸하러 한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그곳에서 옛 부인을 만났다. 부인은 초라한 행색의 전남편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잠시 쉴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때 후남편이 돌아오자 부인은 다급한 나머지 전남편을 볏짚 더미 속에 숨겼다(나머지 이야기는 위의 전설1과 같음).
이후 옥황상제는 세 사람의 감동적인 사랑을 알게 되고, 그들이 영원히 같이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조왕신으로 만들어 전남편은 집안을 관리하는 터주신으로, 아내는 장보기를 챙기는 지신으로, 후남편은 주방을 돌보는 부엌신으로 임명했다.
세 조왕신은 부엌에 상주하며 베트남의 각 가정을 보호하고 다른 악귀들의 침투를 막는 역할을 한다. 조왕신은 음력 섣달 스무사흘이 되면 비단잉어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서 옥황 상제에게 지난 한 해 동안 그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세세히 보고한다. 옥황상제는 이 보고를 잘 듣고, 집주인이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다음 해에 복을 많이 내려주고, 악한 일을 많이 했으면 재앙을 내려보낸다.
그래서 각 가정은 온 가족이 모여 조왕신 승천일에 풍성한 제단을 차리고 조왕신이 자신의 가정사를 옥황상제에게 좋게 말해 달라는 뜻으로 제사를 올리며, 새해 집안의 평안과 가족의 화목을 기원한다.
조왕신을 위한 제단의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조왕신이 타고 갈 살아 있는 비단잉어 3마리(종이 잉어도 가능), 하늘나라로 다녀오는 데 필요한 노잣돈, 종이로 만든 옷, 모자, 신발 각 3벌, 쌀 1그릇, 소금 1그릇, 돼지고기 목살 혹은 삶은 닭 한 마리, 찹쌀밥, 바인쯩, 찹쌀로 빚은 술, 꽃(보통 국화꽃), 과일 그리고 채소와 고기로 만드는 베트남 전통 음식이 가장 기본이다. 또한 가정마다 형편에 따라 예물을 추가하기도 한다.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에는 노잣돈, 종이 옷과 모자, 신발들은 모두 태우고 잉어는 강이나 호수에 방생한다. 베트남 주석이나 지역 인사들이 하노이의 서호나 호찌민의 사이공강과 같은 국가의 상징적인 장소에서 잉어를 방생하는 큰 행사를 여는 경우도 있다.
조왕신 제사를 마치면 신들은 하늘로 올라가서 옥황상제에게 미주알고주알 보고를 마치고 설날 전날 밤인 그믐날에 다시 내려온다. 조왕신이 내려온 다음 날에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베트남의 각 가정에서는 제단에 조상신과 함께 조왕신을 모셔놓고 숭배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조왕신은 베트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왕신은 중국 도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에 퍼져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집안을 보호하는 신으로 성주신(집), 조왕신(부엌), 철융신(장독대)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는 산업화 이후 민속 신앙이 거의 사라져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힘들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조왕신 신앙은 나라마다 조금씩 형태가 다르지만, 부엌이 가족의 안녕을 지키는 중요한 공간이며, 부엌을 관리하는 여자(아내)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정서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