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서대문 사거리 우체통의 소식’ 장재선
전하기에 안 된 소식이지만 저의 몸이 늙어 며칠 전에
담은 사연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사철 내내 풍성했던 이
야기를 이젠 쉬는 적이 많답니다.
길 건너 실버 극장 있었을 때 주인공이었던 노는계집
창娼이 두 번째 놀고 세 번째 놀지 못하고 떠난 후에는 병
원 뜨락을 돌아 나온 바람이 저의 튀어나온 이마를 간질
여도 전처럼 웃음이 나지 않는답니다, 마음도 늙어.
은행 건물 위쪽으로 전광판이 우뚝 설 때 새색시처럼
수줍게 훔쳐보곤 했는데 이젠 텅 빈 하늘의 오만가지 표
정을 그리워합니다, 십 년도 안 돼.
사람의 일에 귀 기울이다가 쉬이 늙었으면서 그들의 손
에 누더기 몸을 맡겨 진공眞空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어
찌 꿈꾸겠습니까만 한가로운 요즘엔 그 꿈에서만 오로지
마음이 달그락거린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