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성탄전야의 산책을 기억하다’ 장재선

산동네 교회. 교인은 장독과 프로판가스 숫자보다 적을 지도 모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지키는 온기는 결코 식지 않을 것 같다. 산타 할아버지도, 성탄절 새벽송 부르던 성가대원들은 지금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초겨울이 엷게 흐르는 거리
한 잔 낮술을 걸친 양
사내들마다 걸음이 넉넉하고
처녀아이들의 웃음이
음반 가게의 성탄 추리처럼
반짝이었던 저녁

봉제 공장 담을 넘어 온 불빛이
교회당 성가 소리와 어울리고,
고시촌 아래 마을 저녁 길을
혼자 걷는
젊음의 허기를
어루만졌던 저녁

문득 고개를 들면,
천구백팔십년대의 하늘에
일찍 죽은 그대의 별빛
그 맑은 미소를
슬프지 않은 몸짓에
다시 받으며 걸어가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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