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 한국의 김·이·박에 해당하는 성씨는?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외]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잘 알다시피 김씨다. 2015년 기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김씨가 약 1천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5퍼센트에 이른다. 5명 중 1명은 김씨인 셈이다. 김씨 다음은 이씨로 14.7퍼센트, 김씨와 이씨를 합하면 36퍼센트가 넘는다.
일반 사람들을 가리킬 때 중국에서는 ‘장삼이사(張三李四)’라고 하는데, 중국의 장씨와 이씨를 합한 비율은 14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특정 성씨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보다 특정 성씨 비중이 훨씬 높은 나라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에는 100여개의 성씨가 있는데, 이 가운데 상위 14개 성씨가 전체의 87퍼센트에 이른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응우옌(Nguy?n, 한자로는 완阮)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8.4퍼센트, 2위인 쩐(Tr?n, 한자로는 진陳)씨는 11퍼센트로, 응우옌씨와 쩐씨의 비중을 합하면 50퍼센트에 가깝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컬링 여자대표팀은 ‘팀 킴(Team Kim)’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선수 모두가 김씨여서 생겨난 별명이다. 당연히 베트남 국가대표팀 가운데도 응우옌이라는 성을 가진 선수가 절대적으로 많다. 2019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선수 23명 가운데 응우옌씨가 9명이나 되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호찌민의 성도 응우옌이다. 호찌민의 본명은 응우옌신꿍(Nguy?n Sinh Cung, 阮生恭)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오늘날 베트남을 움직이는 권력 서열 1위부터 3위까지의 인물이 모두 응우옌씨다. 당서기장 겸 국가 주석인 응우옌푸쫑, 총리인 응우옌 쑤언푹, 국회의장인 응우옌 티낌응언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면 왜 베트남에서는 응우옌씨가 그토록 많을까? 역사적 연유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중국의 남북조 시대(420~589)의 대혼란을 피해 중국 남부 지역에 살던 응우옌씨들이 베트남으로 옮겨와 정착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왕조가 바뀔 때마다 지난 왕조의 성씨를 지닌 사람들이 보복을 피하기 위해 응우옌씨로 바꾸었다.
1226년 리 왕조가 멸망했을 때 리씨들이 그랬고, 1407년 호(胡) 왕조가 무너졌을 때는 호씨들이 그랬으며, 1592년 막(莫) 왕조가 붕괴했을 때는 막씨들이, 1802년 응우옌 왕조가 들어섰을 때는 이전 왕조인 찐(鄭)씨들이 성을 응우옌으로 바꿨다.
응우옌 왕조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데, 이 시기에는 응우옌 성씨를 가진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 많은 사람이 응우옌으로 성을 고쳤다. 이처럼 베트남에서는 너도나도 성이 응우옌이니 사람을 식별해주는 성씨의 기능이 상당히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상대방을 부를 때 성보다는 이름으로 부르는 게 보통이다.
따라서 ‘응우옌 티타인떰 선생님’을 부를 때는 ‘떰 선생님’, ‘응우옌 타인후옌 선생님’을 부를 때는 ‘후옌 선생님’이라고 한다. 물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성과 이름을 모두 부르는 것이 좋다. 베트남 사람을 만났을 때, 끝 이름으로 불러준다면 호감지수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