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⑥] 한국인이 베트남어 배우기 쉬운 까닭?
[아시아엔=심형철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외] 현재 베트남어 표기에 사용하는 문자는 로마자를 차용한 ‘꾸옥응으’(국어)이다. 꾸옥응으는 ‘쯔꾸옥응으’(국어 글자)라고도 한다. 베트남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므로,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한자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꾸옥응으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꾸옥응으는 어떻게 만들어진 문자일까?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기원전 179년부터 기원후 938년까지 1000년 이상 중국 지배를 받았다. 당연히 문자도 한자를 사용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경부터 한자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때부터 20세기 초에 꾸옥응으를 사용하기까지 2천여년을 사용한 셈이다.
한자는 학문을 하는 선비의 전유물로, 실제로 쓰려면 오랜 세월을 공부해야 했다. 따라서 한자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
유학자뿐이었다. 게다가 한자는 표의문자이므로 베트남어 고유의 음운을 적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의 한자를 응용하여 ‘쯔놈(字?)’을 만들었다. 쯔(字)는 글자, 놈(?)은 일상적인 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고유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이두를 고안한 것과 같다.
쯔놈은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비공식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쯔놈으로 쓴 응우옌주(阮攸)의 운문 소설인 <쭈옌 끼에우(翹傳)>는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한자와 쯔놈을 혼용해도 여전히 문맹률이 매우 높았다.
16~17세기 초에 서양 문물과 함께 유럽의 선교사들이 선교를 하려고 베트남으로 들어오면서 베트남어 표기 방법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서양 선교사들은 베트남어를 배우면서,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그러하듯, 한자 하나하나에 알파벳으로 독음을 달았다. 그리고 읽는 소리가 같더라도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에는 성조를 매겨 구분했다.
프랑스 신부인 알렉상드르 드 로드(Alexandre de Rhodes, 1591~1660)가 고안한 방법을 모태로 한 이 표기법은 한자나 쯔놈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었다. 또 오랫동안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더욱 다듬어지고 통일되었다. 이것이 바로 현재 꾸옥응으의 모태가 되었다.
이처럼 베트남어 표기법이 서양의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거쳐 베트남의 공식문자가 되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지금도 베트남어에는 프랑스어 흔적이 많다. 심지어 당시 프랑스인이 세운 학교를 다닌 베트남 학생들은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프랑스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베트남 젊은 세대들은 꾸옥응으를 사용하다 보니, 베트남어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자를 잘 모른다. 지금도 베트남 곳곳의 유적지나 서적에서 한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새해에 복을 기원하는 글자도 한자를 쓴다. 하지만 대다수의 베트남 젊은이는 한자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한자어로 이루어진 베트남어 단어의 의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어쨌든 베트남이 우리나라와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점은 베트남어를 학습할 때 도움이 된다. 베트남어의 많은 단어가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서남북을 뜻하는 ‘동떠이남박(東西南北)’, 강을 의미하는 ‘장(江)’, 용을 의미하는 ‘롱(龍)’, 나라를 의미하는 ‘꾸옥(國)’ 등은 우리나라에서 읽는 한자어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한자를 잘 이해하는 한국 사람이라면 베트남어 배우기가 한결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