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바로 알기②] 용의 ‘후예’···’어우꺼’와 ‘락롱꿘’ 신화

‘어우꺼’와 ‘락롱꿘’의 이별 장면를 그린 베트남 민속화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아시아엔=심형철·박계환·홍경희·조윤희·응우옌 티타인떰·응우옌 타인후엔] 세계의 모든 민족은 자신들이 어디서 비롯했는지를 신화나 전설 혹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알고 있다. 이는 하나의 민족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우리 민족의 기원에 관해서는 단군신화가 있고 이를 개천절로 기념하듯이, 베트남 민족도 ‘락롱꿘과 어우꺼’라는 건국신화를 가지고 있다.

옛날에 린남 지역에 낀즈엉브엉(Kinh Dương Vương) 왕이 있었는데, 그는 힘이 세고 물속을 걷기도 하는 등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어느 날 낀즈엉브엉 왕은 동딘 호수에놀러 가서 용왕의 딸인 롱느를 만나 결혼한 후 숭럼(Sùng Lâm)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숭럼도 아버지처럼 힘이 세고 물속을 걷는 능력을 가졌다. 그가 왕위에 오르자 락롱꿘(Lạc Long Quân)으로 이름을 정했다.

락롱꿘은 물귀신, 구미호, 나무귀신과 같은 요괴들을 물리쳐 마을 사람들을 돕는가 하면, 농사짓는 법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다. 그때 북쪽에 있는 데라이(Ðế Lai) 왕은 어우꺼라는 예쁜 딸과 병사들을 데리고 왔다. 데라이 왕은 린남의 풍경이 아름답고 귀한 목재와 새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서 오래 살고자 했다. 락롱꿘은 잘생긴 남자로 변신하여 데라이 왕을 찾아갔는데, 데라이 왕은 없고, 예쁜 어우꺼 공주만 보게 되었다. 어우꺼 공주는 락롱꿘과 사랑에 빠져 그를 따라나섰다.

나중에 데라이 왕이 집에 돌아오자 딸이 없는 것을 알고 찾으러 나섰는데, 락롱꿘이 모든 길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북쪽으로 돌아갔다. 락롱꿘은 산의 여신인 어우꺼와 결혼했다. 어우꺼는 3년 3개월 10일 동안 임신한 끝에 알 주머니를 낳았는데, 락롱꿘은 매우 무섭고 놀라서 이를 하늘과 땅에 바쳤다. 그가 제사를 드리는 중에 하늘에서 오색구름을 휘감은 5명의 신이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옥황상제가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주셨고, 어우꺼가 100
개의 알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낳은 것은 길조이며, 앞으
로 태어날 100명의 아이들이 나라를 잘 지킬 것입니다.”

이듬해 1월 보름날이 되자 오색구름이 다시 나타나더니 어우꺼 집에서 환하게 빛났다. 그러자 100개의 알이 모두 깨지면서 예쁘고 건강하고 똑똑한 1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후 여러 해 동안 락롱꿘은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는 바다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어우꺼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래 물의 신이고 당신은 산의 신이라 오래 같이 있을 수 없어요.”

그러고는 두 사람은 100명의 아이를 50명씩 나누어 각각 바다와 산으로 데려갔다. 락롱꿘은 남해로 가서 빈다(Bình
Đà, 지금의 하노이 탄오아이현 빈민)에 이르렀는데, 이곳의 땅 모양이 좋고 강도 많으며 많은 언덕이 용과 호랑이를 닮은 형상이어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부터 락롱꿘은 날마다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과 짐승
잡는 법을 가르쳤다. 그가 나라를 처음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무로 옷과 깔개를 만들고 수산물로 젓갈을
담그며 대나무로 밥을 지었다. 호랑이와 늑대를 피하려고 나무로 집을 만들고, 숲에 쉽게 들어가기 위해 머리를 짧
게 잘랐으며, 아이를 낳을 때는 바나나잎을 이용했다.

당시는 쩌우까우(석회를 바른 구장나무 잎과 빈랑나무 열매)가 없었기에 남녀가 결혼할 때 흙으로 예물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예물로 쓰기 위해 물소와 염소를 죽였다. 백성들이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물귀신이 나타나 이들을 괴롭혔는데, 락롱꿘의 모습을 문신으로 새기자 물귀신이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베트남에는 문신을 새기는 풍습이 생겼다.

차츰 백성들의 생활이 좋아지고, 논과 마을이 넓어지면서 현재의 홍강(송꼬이강) 델타(삼각주)에 처음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천둥 번개가 치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밤, 락롱꿘은 자녀들과 백성을 마지막으로 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락롱꿘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노이빈다 사당을 세우고 일 년 내내 제사를 지냈다.

훙왕사당 안 훙왕 상

한편 어우꺼를 따라 산으로 간 50명의 아이 중 첫째 아들은 훙(Hùng)왕(훙왕은 첫째 왕의 칭호라는 설과, 왕이면 무조건 훙왕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음)에 즉위하여 베트남 최초의 국가인 반랑국을 세웠다. 이 반랑국은 18대에 걸쳐 기원전 208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훙왕은 전국을 15부(군)로 나누어 통치했다.

현재 수도 하노이로부터 서북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진 푸토성의 비엣찌 지역에는 훙왕의 사당이 있는데, 매년 음력 3월 10일이 되면 여기서 훙왕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 이날은 2007년부터 베트남의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개천절에 해당하는 날이다.

일주일 전부터 행사를 시작하는데, 이 의례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실 과거에는 음력 3월 10일 하루만 제사를 지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음양오행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길일에 제를 올렸기 때문에 훙왕의 제사는 일 년 내내 계속되었다.

그래서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게 되고, 훙왕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한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그러자 1917년 7월 25일에 레쯩응옥이라는 푸토 성주는 응우옌 왕조에 음력 3월 10일을 훙왕의 제삿날로 지정해 달라는 공문을 올렸다. 훙왕 사당에 있는 훙왕 기록서에 따르면, 음력 3월 10일은 마지막 훙왕(18번째 훙왕)의 제삿날이라고 한다.

훙왕 제사 행사는 홀수 해에는 푸토성에서 열리고, 짝수 해에는 전국적인 규모로 열린다. 매년 음력 3월 10일에 푸토성 외에 호찌민시, 껀터, 다낭 같은 전국 각지에서도 이날을 기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행사를 통해 베트남 사람들은 조상과 민족 전통에 대해 자부심과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훙왕사당. 따오단 공원에 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전국 각지의 베트남 사람들은 훙왕 사당을 찾아 향을 사르고, 씨름이나 조정, 줄다리기와 같은 전통놀이를 펼친다. 오늘날 베트남 사람들은 자신이 용의 자손이라 말하며 이를 자랑스러워 한다.

훙왕의 제삿날과 관련하여 구전되는 말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Dù ai đi ngược về xuôi
Nhớ ngày Giỗ Tổ mồng mười tháng ba.
Dù ai buôn bán gần xa
Nhớ ngày Giỗ Tổ tháng ba mùng mười

누구든지 어디에 가든지
3월 10일 조상 제사를 기억하라
누구든지 멀리 있든지 가까이 있든지
3월 10일 조상 제사를 기억하라

이처럼 훙왕의 건국신화는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처럼 민족
적 자부심의 원천이자 베트남 국민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45년 9월 18일에 호찌민은 훙왕 사당 앞에서 군인들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훙왕들이 나라를 세웠으니, 우리도 함께 나라를 지키자!”

이후 이 말은 베트남 국민의 애국심을 이끌어내고, 전 국민을 하나로 단결하게 하는 구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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